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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흘 뒤 헌법재판소는 ‘식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국내 유일의 헌법재판 기관인 헌법재판소가 22일부터 정상적인 기능을 하기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날 송두환 헌법재판관(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퇴임하면 헌재가 사상 초유의 재판관 7인 체제를 맞기 때문이다. 헌법상 헌재는 9명의 재판관이 심리하게 돼 있다. 그러나 지난 1월 이강국 전 헌재소장 퇴임 후 지명된 이동흡 전 헌재소장 후보자가 적격성 논란 속에 자진사퇴했다. 헌재소장이 공석인 상태에서 송 재판관마저 퇴임하게 되는 것이다.

 1988년 출범 이후 헌재가 재판을 멈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이번은 상황이 다르다. 재판관 전원이 참석하는 최고의결기구인 평의(評議)와 결정 선고 진행이 모두 어렵다.

 헌법재판소법상 재판관 7명 이상이 참석하면 의사결정은 가능하다. 하지만 6명 이상의 재판관의 동의를 필요로 하는 위헌결정은 나오기 어려울 수 있다. 전원일치나 다름없는 합의가 나와야 해서다. 헌재 안팎에서는 “헌재가 식물상태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치권이 차기 헌재소장 후보자 인선과 관련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으면서 사태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헌재가 17일 “통상 매월 마지막 주 목요일에 이뤄지는 결정선고(이번 달은 28일)를 앞당겨 오는 21일 선고하기로 했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헌재 관계자는 “송 재판관 퇴임 전에 재판관 8인 체제에서 3월 선고를 하기 위해 선고일정을 앞당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3월 선고 때 정치적으로 민감하거나 사회적 반향이 큰 사건은 제외된 것으로 알려졌다. 헌재는 이 전 소장 퇴임 이후 처음 이뤄진 지난 2월 선고 때도 위헌이나 헌법불합치, 한정합헌·한정위헌 등의 결정 없이 51건만 본안심의에 부쳐 처리했다.

 헌재는 출범 이후 이번 경우를 비롯해 세 번의 재판관 공석사태를 겪었다. 2006년 전효숙 전 헌재소장 후보자 낙마 직후 140여 일 동안 8인 체제로 운영됐다. 2011~2012년에는 조대현 전 재판관 후임으로 지명된 조용환 전 재판관 후보자 낙마로 14개월 공백사태를 겪었다. 헌재의 한 선임급 연구관은 “두 명의 재판관 부재로 헌재가 위헌상태에 빠지는 것은 비극”이라고 지적했다. 대한변호사협회도 지난 7일 성명서를 내 “국회와 정부의 헌법기관에 대한 모독이 도를 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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