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 바꿔보기 수업 … 친구끼리 다툴 일 없어졌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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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대전시 동구 가오동의 가오초등학교 5학년 4반 교실에서 야구배트를 든 이태연군(왼쪽)과 딱지를 가진 김규민군이 서로 자신이 좋아하는 놀이를 하자며 다툰 뒤 대화를 하고 있다. [대전=프리랜서 김성태]

지난 14일 오전 대전시 동구 가오동의 가오초등학교 5학년 4반 교실에선 색다른 수업을 하고 있었다. 야구방망이를 든 이태연(11)군이 딱지를 갖고 있는 김규민(11)군에게 말을 걸었다. “우리 야구할까.” 하지만 규민이는 “네가 하고 싶은 것만 하냐. 지난번에도 그랬잖아”라고 화를 냈다. 급우 간에 생길 수 있는 갈등을 상황극으로 꾸며보는 시간이었다.

 이때 담임 윤경은(43·여) 교사가 전체 학생에게 물었다. “두 친구가 다투게 생겼네요. 왜 그럴까요.” 그러자 학생들은 “서로 하고 싶은 게 달라서요” “자기 생각만 우기니까요” 같은 답을 내놨다. 여기저기서 해법도 제시했다. “성급하게 판단하지 마.” “내가 원하는 것을 분명히 부탁해 봐.”

 반 친구들의 말을 들은 태연이가 “미안해. 난 진짜 야구하고 싶은데 너는 싫으니”라고 물었다. 그러자 규민이의 반응도 달라졌다. “그럼 이번엔 야구하고 다음엔 내가 좋아하는 놀이 하자.” 태연이도 “내 마음을 이해해줘 고마워. 다음엔 꼭 딱지 하자”고 화답하면서 상황극은 끝났다.

이날의 수업 주제는 ‘갈등을 대화로 풀어가는 삶’이었다. 상황극을 지켜본 유혜빈(11)양은 “먼저 양보하고 이해하면 다툴 일도 없고 친구 관계도 좋아질 것 같다”고 말했다.

 이 학교는 학년별 인성교육의 주제를 정해 시행하고 있다. 태연·규민이 등 5학년 학생 전체는 올해 ‘친구에게 사과하기’를 몸에 익혀야 한다. 윤 교사는 “학생들이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면서 스스로 갈등을 푸는 방법을 찾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2006년 문을 연 가오초는 36개 학급에 1005명의 학생이 다니고 있다. 아파트단지에 둘러싸여 유해환경은 적은 편이다. 그러나 맞벌이 가정의 비율이 53.5%에 달하다 보니 부모와 대화가 부족할 가능성이 있었다. 생업에 바빠 인성교육에 신경을 쓰지 못한다는 학부모도 많았다.

 2011년 가을 이 학교 조재숙 교감과 교사들은 머리를 맞댔다. 학생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키워주기 위해 학년별로 차별화한 인성교육을 하자는 의견이 모아졌다. 여기에 맞게 수업을 개편하는 게 급선무였다. 선배 교사들이 새내기 교사의 멘토가 돼 수업을 참관하고 조언해 줬다. ‘수업의 달인’ 제도도 만들어 동료교사들끼리 벤치마킹도 했다.

학부모의 호응을 끌어내기 위해 가정통신문으로 “하루에 꼭 한 번은 온 가족이 밥을 먹고 학교에서 어떤 인성교육을 받았는지 확인해 달라”고 요청을 했다.

 학교 전체가 매달려 1년간 인성교육에 힘을 기울이니 변화가 나타났다. 4학년 김형찬(10)군의 어머니 심민정(38)씨도 변화를 공감한다. 형찬이는 3학년이던 지난 한 해 ‘친구를 존중하는 마음 갖기’라는 프로젝트를 했다. “친구를 이해하고 사랑하자는 내용의 메모를 매일 하고 자기 생활을 점검하더라고요. 하루도 안 빼먹었어요. 참 대견했어요. 이전엔 말도 거칠고 자기 형과도 많이 다퉜었거든요.”

 인성교육은 학교 밖으로도 확대됐다. 3~6학년 학생회가 주축인 봉사단은 학교 인근 장애학교(대전혜광학교)와 임마뉴엘요양원을 수시로 방문해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이런 노력을 인정받아 가오초등학교는 지난해 교육과학기술부가 선정하는 전국 100대 학교문화 우수학교로도 선정됐다. 특히 학년별 인성교육 프로젝트가 높은 평가를 받았다. 조 교감은 “장기적인 인성교육을 위해 학년별 프로젝트를 마련한 것이 주효했다”며 “인성교육을 통해 많은 학생이 명랑해졌고 학습성취도도 높아졌다”고 말했다.

신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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