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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뜩한 파괴자 'Let 다이'의 다이

중앙일보

입력

최근에 간행되고 있는 작품들 중에서 이렇게 파괴적인 주인공이 있었는가 싶다. 깡패나 학원폭력을 다루고 있지만 양념처럼 흩뿌려진 다른 작품들과는 조금 다르게 농도가 깊고, 그와 제희라는 인물의 사랑은 동성애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게다가 다이는 황홀하게 멋있는 만큼 정말 무서운 인물이다.


이제 동성애라는 소재가 그리 낯설지는 않다. 책에서 TV에서 영화에서, 그리고 꽃미남들의 축제 한판이 멋들어진 만화에서. ‘동성애라도 이렇게 멋진 아이들이라면 용서할 수 있어’라는 대사는 일본만화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순정만화계(?)에도 드디어 나타났다. 그러나 동성애적인 논란을 충분히 불러일으키고 있지만 딱 그렇다라고 말하기엔 뭔가 좀 어색한 그런 모습으로... 게다가 결코 주위의 인물이라면 동조할 수 없는, 작은 악마 같은 모습을 가진 그런 인물로 말이다.

그저 평범하고 연약한 소년 제희. 어느날 깡패들에게 둘러싸인 윤은을 구해준 계기로 폭력써클의 짱 다이에게 찍히는 신세가 된다. 다이의 계속되는 협박에 그의 써클에 관계하게 되고,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다이의 묘한 매력에 이끌리게 된다. 제희의 도움을 받은 윤은은 제희에게 사랑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자신의 동생인 은형이 좋아하는 남자친구가 제희라는 것을 알고 갈등 한다.


어디에나 꼭 있기 마련인 이런 우유부단한 여자로 인해 은형은 상처를 받는데다, 제희의 뒤를 쫓다가 다이 패거리에게 성폭행을 당하게 된다.
제희는 은형이 폭행 당하는 바로 그 곳에 있었던 다이가 그 사실을 묵과하고 지시했다는 것에 분노와 아픔을 느끼고, 그러면서도 은형에게 어찌해줄 수 없는 자신으로 인해 심한 고민을 하게 된다. 다이는 제희를 사랑한다고 공표하고, 미워하면서도 그에게 끌리는 제희는 그저 평범한 소년이었던 떄를 그리워한다. 그러나 다이를 따라 흠뻑 쏟아지는 빗속을 뛰어가며 오히려 자유를 느끼는 제희는 새롭게 자신이 태어나고 있음도 알게 된다.

다이라는 인물은 한마디로 악마 같다. 자신의 서클 안에서 일어나는 강간에 눈도 꿈쩍 안하고, 기차가 다가오는 철로 위에 머리를 들이미는 내기를 할 정도로 두려움을 모르는 섬뜩함도 있다. 사랑한다고 말하는 제희에 대한 그의 행동은 가학적이기까지 하고 제희의 친구를 박살 내는 소유욕까지 갖고 있다. 끝간데를 모르는 다이의 행동, 그리고 주변 사람의 만류에도 마음의 이끌림을 막지 못하는 제희.
다이는 깊이를 알 수 없는 눈을 가지고 있으며,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는 시한폭탄과도 같고, 언제 죽어도 상관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그래서 미련도 없고 두려움도 없다.


사실 밑바탕에 깔린 설정은 다른 작품들과 다를 게 없다. 겉으로 보기에 행복의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는 부유한 집. 그러나 내부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문제를 앉고 있으며 가족간의 유대감은 없는, 반항적인 문제아를 만들어내기 딱 좋은 집안. 다이도 그런 집의 아들이다. 그로 인한 것인지 사람에 대한 존중이나 애정이 없다. 제희에 대한 것도 어찌 보면 집착에 다름 아니다. 혹은 자신이 애정을 쏟고 자기만을 봐줄 상대를 추구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집착이든 가학이든 다이는 제희를 붙잡고 놓치 않을 것 같다. 존재 자체가 비극의 시발점이 되어버린 불쌍한 청춘 다이. 제희 또한 연약한 겉모습을 하고 있지만 폭력을 휘두르지 않을 뿐이지 견뎌내는 것에서는 다이 못지않은 강인함을 갖고 있다.

원수연의 ‘Let 다이’는 작가의 두터운 팬층과 다이라는 인물의 섬찟한 매력으로 꽤 많은 팬을 갖고 있다. 현재 작가의 홈페이지에서는 ‘Let 다이’의 논란에 대해 팬들이 충분히 말할 수 있는 게시판을 열어 놓고 있다. 작품을 보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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