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들의 쉬는 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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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미국의 시인「롱펠로」의 시에 하루종일 시달린 몸을 쉬게 하는 시간을 어린이 시간이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는 구절이 있다. 어린이들이 쉬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으며 어른들도 조용히 쉬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며 당연한 이야기다.
그런데 이 당연하고도 명확한 이야기가 우리 나라에서는 잘 응하고 있지 않는 것 같다. 우리가 아침저녁으로 듣고 보고하는 라디오나 신문을 예로 들어보자. 그래도 라디오에서는 어린이를 위한 음악이나 교양에 관한 시간이 있어서 쉬는 시간을 마련하고 있는 것은 다행인데, 라디오와 더불어 우리 나라「매스컴」의 중요한 수단인 신문의 경우에는 그 경향이 판 다르다.
어린이 신문의 대부분이 쉬는 시간보다 바쁘고 고달픈 시간을 마련하는데 애쓰고 있다. 무슨 과목 총 정리니, 무슨 모의시험이니 하는데 주력하여, 신문을 보면서 쉬는 동안에 어린이들의 정신의 양식이 될 것을 마련하는 대는 신경을 덜 쓰고있는 것 같다. 더욱이나「탤리비전」에 이르러서는 더욱 심하다. 시각 상으로 청각 상으로 그리고 정신상으로 요란하고 떠들썩하여 쉬는 시간을 마련하여 주지는 않는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어린이들이 시간을 빼앗는 것은 요즈음 막 첫 고비를 넘어선 입학시험 공부다. 공부를 많이 시켜서 좋은 학교에 넣고, 장차 훌륭한 사람이 되게 하려는 생각은 매우 좋다.
그런데 그 공부가 얼마나 소용 있는 것인가를 묻는다면, 어느 교사나 학부형이 성큼 긍정적으로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중학입시에서 만점을 받은 아동이 중학2학년 때 그 문제의 시험을 다시 본다면 60점 맞기도 어려울 것이다. 하물며 그러한 지식이 중학·대학에서 공부하는데 또 사회에 나가서 일하는데 있어서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인가. 더욱이나 초등학교 6년 생의 체위가 5년 생보다 못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참으로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중학입시 준비에서 대학입시까지 거의 10년간 우리 나라 젊은이들의 소비하는 시간과, 그 정신상 신체상의 소모를 덜하게 하여, 어린이가 어른이 되고 나라의 주인이 되었을 때에 심신 다같이 건전한 일꾼이 되어야할 것이며, 그러기 의하여서는 부형이 집념과 허영을 떠난 양식과 당국자의 적절하고도 과감한 시책이 절실히 느껴진다.
전해종<서울문리대교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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