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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야구, 시험만 잘 칠 수는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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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서승욱
도쿄특파원

요즘 일본 야구계의 최고 화제 인물은 니혼햄 파이터스의 신인 ‘투수 겸 타자’ 오타니 쇼헤이(大谷翔平·19)다. 아직 보직을 결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투수 겸 타자’다. 1m93㎝·86㎏의 오타니는 고교 3학년 때 시속 160㎞의 공을 던져 일본 열도를 흥분시켰다. 고교 통산 홈런도 56개나 된다.

 그가 투수로 뛸지 야수로 뛸지, 아니면 투수와 야수를 겸할지는 야구계 초미의 관심사다.

 일본대표팀 ‘사무라이 재팬’이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준결승에 진출한 와중에도 그에 대한 관심은 전혀 식지 않았다. 일본이 대만에 극적인 역전승을 거둔 직후인 지난 주말에도 지상파 뉴스는 오타니 관련 뉴스를 별도로 편성했다. “연습경기에 등판한 오타니가 30개 중 23개를 직구로 던졌고, 대부분이 150㎞ 이상이었다”는 내용이다. 깨끗한 외모에 청산유수의 말솜씨까지 갖췄으니 그에게 쏠리는 언론의 관심은 거의 스토커 수준이다. 2월 초 오타니가 오키나와 2군캠프에서 훈련을 시작하자 전 방송사가 총출동했고, 현미경을 들이대듯 그의 몸짓 하나하나를 분석했다. 그가 가벼운 훈련만 소화한 날에도 1군 캠프보다 많은 500명의 팬이 몰려들었다.

 이 어린 소년을 최고의 스타로 만든 건 식지 않는 일본의 고교야구 열기다. 봄과 여름 두 차례 효고(兵庫)현 니시노미야(西宮)시 고시엔(甲子園) 구장에서 벌어지는 고교야구전국대회는 90년의 역사 속에도 여전히 최고의 인기를 끌고 있다. 전국 4200개 팀 17만 명의 선수가 32개교(봄), 49개교(여름)에만 주어지는 꿈의 무대 출전을 위해 투혼을 불사른다. 신문들은 대회가 열리기 훨씬 전부터 주목할 팀과 선수를 소개한다. 어느 학교가 이겼는지 못지않게 어느 학교 고적대가 응원을 잘했는지도 아저씨 팬들 사이에선 화제다. 팬들의 폭발적 환호 속에 우승을 차지한 학교의 명예는 하늘을 찌르지만, 오타니처럼 초반 탈락한 팀 선수에게도 스타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열려 있다.

 최근 김인식 전 감독은 “한국대표팀 수준의 팀을 네 개쯤은 만들 수 있을 것”이라며 일본 야구의 두꺼운 선수층을 칭찬했다. ‘고시엔’과 ‘오타니 신드롬’으로 상징되는 아마야구의 활기는 강한 일본 야구를 지탱하는 힘이다.

 광적인 야구팬임을 자부하는 기자 역시 류중일호의 어이없는 1라운드 탈락에 큰 충격을 받았다. 부러워하면 지는 것이라지만, “두 번만 더 이기면 3연속 우승”이라며 들떠 있는 일본의 야구 열기를 옆에서 지켜보기란 정말 고역이다.

 하지만 55개 팀에 등록선수는 1700명뿐이고 왕년의 인기를 잃어버린 지 오래인 우리 고교야구의 현실, 이런 토양에서 WBC우승만을 바라는 건 ‘공부는 안 해도 시험은 잘 치고 싶다’는 심보가 아닐까.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동대문야구장을 찾았던 초등학생 시절 이후 단 한번도 고교야구 경기장을 찾지 않은 기자도 부끄럽긴 마찬가지다.

서 승 욱 도쿄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