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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B] 스타열전 (74) - 제이미 모이어

중앙일보

입력

시애틀 매리너스의 좌완 선발투수 제이미 모이어(39)를 보면 그가 어떻게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지 의구심을 들게 한다.

180cm, 77kg의 왜소한 체격, 40을 바라보는 나이, 85마일에도 미치지 못하는 볼스피드 등. 그의 얼굴은 차라리 운동선수라기보다는 보통 샐러리맨을 연상시키기까지 한다.

그렇지만 그의 투수를 보면 그런 생각이 바뀔 수 밖에 없다. 비록 85마일에도 미치지 못하는 구속이지만 정교한 제구력과 다양한 체인지업이 더해진 그의 느린 공은 가히 바톨로 콜론(26,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100마일 직구를 능가하는 것이다.

거기에 16년간의 오랜 메이저리그 경험이 더해져 2001시즌 모이어는 20승(6패)을 거두며 당당히 최고 투수반열에 그의 이름을 올렸다.

사실 제이미 모이어가 16년 경력의 베테랑 선발투수이지만 정작 그가 피칭의 눈을 뜬 것은 얼마되지 않았다. 1996년 매리너스로 트레이드되기 전까지 모이어는 그저그런 저니맨에 불과했다.

1984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시카고 컵스에 전체 6순위로 지명되어 86년에 빅리그에 데뷔한 이래 96년까지 그가 옮겨다닌 팀만도 무려 6개. 컵스 시절인 87년, 풀타임 선발투수 첫해에 12승을 거두며 주위의 기대를 모았으나 이후 부진이 계속되었다.

93년 오리올스 유니폼을 입고 다시 12승을 거두며 반짝하였으나 그것도 잠시였다. 방어율은 늘 4점 대 후반을 웃돌았고 기복이 심한 투구내용은 감독과 구단은 그를 신뢰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그가 시즌 후 팀을 옮기기 위해 짐을 싸는 일은 거의 당연한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여러 팀을 전전하며 선수생활을 이어가던 모이어에게 1996년 매리너스로의 트레이드는 선수생활의 새로운 전기가 되었다. 96년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선발과 구원을 오가며 7승 1패, 방어율이 4.50을 기록했던 모이어는 그 해 7월 외야수 대런 브랙(32, 현 뉴욕 메츠)과 맞트레이드되면서 시애틀 매리너스의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당시 에이스 랜디 존슨(38, 현 애리조나 D-백스)의 부상 등이 겹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던 매리너스 투수진은 모이어에게 붙박이 선발기회를 잡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리고 그 해 후반기 11번의 선발등판에서 6승 2패, 방어율 3.31을 기록하며 확실한 선발자리를 꿰차게 되었다.

그리고 이듬해인 97년에 17승(5패, 방어율 3.86)을 거두며 매리너스를 AL서부지구 우승으로 이끄는 주역이 되었다. 랜디 존슨과 모이어, 전혀 스타일이 다른 두 명의 좌완투수가 이끄는 원투펀치는 최고의 위력을 가진 것이었다.

98년과 99년에도 모이어는 각각 15승과 14승을 올리며 98년 시즌 도중 휴스턴 애스트로스로 떠난 랜디 존슨 대신 에이스 역할을 소화해내었다. 특히 1998년 8월 27일에 벌어졌던 클리블랜드와의 경기에서는 그의 통산 100승과 1,000탈삼진 기록을 같은 날 세우는 진풍경을 낳기도 했다.

그러나 2000년 시즌 모이어는 선수생활의 중대한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시즌 초반 그는 왼쪽 어깨근육이상으로 두 달 가까이 부상자명단에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 해 13승(10패)을 거두며 체면치레는 했지만 방어율은 무려 5.49로 치솟았다.

특히 시즌 후반기에 들어서 8, 9월 동안 매경기 난타를 당하며 6연패의 수렁에 빠지게 되자 ‘나이는 못 속인다’라는 비아냥까지 들어야만 했다.

더욱이 뉴욕 양키스와의 리그 챔피언십시리즈를 3일 앞두고는 실시한 연습경기에서는 강한 직선타구에 무릎을 맞아 골절되는 불운까지 당했다. 좌타자가 많은 양키스를 상대로 모이어의 공백은 너무도 커보였다.

계속된 부상과 30대 후반의 많은 나이 등은 그의 재기를 불투명하게 만들었다. 더구나 팀 내부에서는 늙은 모이어 대신 라이언 앤더슨(22)이나 길 메쉬(23)와 같은 젊은 유망주들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모이어는 그런 것에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 묵묵히 재활 훈련을 계속하던 스프링 캠프에서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잇달아 부상을 당하며 팀은 다시 모이어에게 구원의 손길을 뻗쳤다.

2001년 모이어는 한층 업그레이드된 체인지업과 제구력으로 타자들을 사로잡았다. 모이어는 선발진 최고참으로서 다른 선발투수들을 이끌며 팀의 시즌 116승 기록수립에 앞장섰다. 그 자신 역시 86년 데뷔이후 처음으로 20승(6패)이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바로 첫번째 20승을 거둔 최고령 선수가 된 것이다. 하지만 노쇠함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노련한 승부요령은 젊은 투수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값진 재산이었다.

그러나 그가 정작 빛이 난 것은 포스트시즌에서였다. 포스트시즌에서 기우뚱하는 매리러스를 지지하는 버팀목이었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의 디비전시리즈에서 2, 5차전의 선발로 나와 홀로 2승을 따내면서 시리즈 역전승을 이끌어냈다.

양키스와의 챔피언 시리즈 3차전에서도 승리투수가 되어 지난 포스트시즌에서만 3승을 거둔 모이어는 비록 팀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2001 포스트시즌에서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긴 선수였다. 그리고 그의 대활약은 사이영상 투표 4위라는 결과로 다시 한번 입증되었다.

많은 이들은 모이어를 일컬어 ‘체인지업의 마술사’라 부른다. 비록 최고시속은 85마일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같은 구질이라도 최고 14가지의 다른 속도로 변화시키며 타자들의 타이밍을 뺏기 때문에 매년 100개 이상의 많은 삼진을 잡아낸다.

더군다나 그의 공은 직구라 할지라도 그냥 들어오는 법이 없다. 공이 스트라이크존에 통과하면서 변화가 심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타자들에게 실제 속도보다 더 빠르게 느끼도록 만든다.

그런 체인지업의 바탕에는 탁월한 제구력이 깔려있다. 매년 200이닝 안팎으로 던지면서 그가 내주는 포볼 개수는 거의 50개를 믿돈다. 특히 모이어가 즐겨던지는 우타자의 바깥쪽 낮은 볼에 대한 컨트롤은 가히 예술이다.

모이어를 상대하는 타자들은 그날 바깥쪽 낮은 볼이 제대로 들어오면 결코 쳐낼 수 없다고 말할 정도로 위력적이고 정확하다. 그 공은 좌타자에게는 무릎을 파고 들기 때문에 더 위력적이다.

그래서 종종 그를 톰 글래빈(35,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과 자주 비교하기도 한다. 다만 제구력이 잡히지 않는 날에는 연타와 장타를 맞는다는 것은 기교파투수로서 어쩔 수 없는 비애이다.

한때 2000시즌의 부진이후 많은 이들은 체력이 다한 것이 아니냐고 의구심을 가졌다. 그러나 정작 모이어는 다른 부분에서 탈출구를 마련하였다. 그는 투수코치 브라이언 프라이스와 함께 자신의 피칭을 꼼꼼히 분석하였다.

그리고 그가 공을 던질 때 그립에 힘이 너무 들어간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힘이 들어간 그립은 결국 어깨에 부담을 주었고 결국 시즌 후반기에 영향을 주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부상재활과 함께 그립을 부드럽게 잡는데 주력하였다.

그 결과 2001시즌 그의 어깨에 부담을 덜 주게 되었고 많은 이닝을 소화하는데도 문제가 없었다. 결국 꾸준한 몸관리와 함께 자신을 끊임없이 분석하고 문제를 보완하려는 노력은 그가 2001년 209.2이닝을 소화하며 20승을 거둘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얼마전 그는 그의 부인 카렌과 함께 자신의 이름을 딴 자선 재단을 설립하였다. 이름하여 ‘제이미 모이어 재단(Jamie Moyer Foundation)’ 모이어는 그 재단을 통해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동 암환자나 장기이식을 필요로 하는 어린이 환자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이미 기념품판매나 자선행사, 홈구장에서의 다양한 이벤트 등을 통해 100만불에 이르는 기금을 모은 상태이다. 결국 팬들에게 받은 사랑을 다시 돌려줄 줄 아는 선수이기에 더 많은 사랑을 받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한국나이로 41살로 이미 선수로서 환갑을 훨씬 넘어버린 제이미 모이어지만 그에게 아직 노쇠함이란 말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별로 힘을 들이지 않는 그의 피칭은 오히려 40이 넘어서 더욱 빛을 발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어쩌면 그에게 40대 사이영상을 기대한다면 무리일까. 적어도 모이어라면 전혀 불가능해 보이지는 않는다.

제이미 모이어 (Jamie Moyer)
- 1962년 11월 18일 생
- 180cm · 77kg
- 좌투좌타
- 연봉 : 650만달러 (2001년)
- 소속 : 시카고 컵스(1986~88), 텍사스 레인저스(89,90),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91), 볼티모어 오리올스(93~95), 보스턴 레드삭스(96), 시애틀 매리너스 (96~현재)
- 통산성적: 405경기 151승 117패 1381탈삼진 664볼넷 방어율 4.22
- 주요 경력
86년 6월 16일 메이저리그 데뷔
6년 연속 10승 (96~01)
2001년 최고령 첫 20승 기록수립(만38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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