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황폐한 마음 어루만지는 ‘가난의 사도’ 되시길 …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13일 이탈리아 중부 도시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에 있는 성 프란치스코 무덤 앞에서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 수사들이 새로 선출된 교황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제266대 교황으로 뽑힌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은 교황명으로 프란치스코를 택했다. 부유한 상인의 아들이었던 성 프란치스코는 청빈과 용서의 대명사였다. [아시시(이탈리아) AP=뉴시스]

“새 교황이 자신의 이름으로 선택한 프란치스코 성인은 무소유의 정신을 지닌 분이셨다. ‘평화의 기도’를 쓴 시인이기도 하다. 새 교황이 그런 이름을 택했다니 대단하다. 무소유의 철학, 시인의 마음으로 이 시대 황폐한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역할을 해 주시길 기대한다.”

 시인 정호승(63)씨는 종교색 짙은 시편으로 상처 입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로해 왔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기도 하다. 새 교황 선출 소식이 전해진 14일 오전 그는 “마침 아시시의 성인 프란치스코의 전기를 몇 권 구해 읽던 중이었다”며 기대감을 표시했다.

 새 교황이 한국 가톨릭계를 기대에 부풀게 하고 있다. 첫 남미 출신 교황인데다 가톨릭에서 가장 사랑받는 성인인 프란치스코를 교황명으로 택해 시대 흐름에 맞는 변화와 함께 적극적인 사랑의 실천이 예상된다는 이유에서다.

 서울대교구 염수정 대주교는 축하 메시지에서 “새 교황께서 인종과 종교를 초월해서 관용과 포용력을 지니고 전 세계의 영적 지도자로서, 무엇보다 세계의 평화를 구현하실 수 있도록 많은 기도를 바쳐주시기 바란다”고 밝혔다.

 염 대주교는 이어 변화에 대한 기대를 비쳤다. “가톨릭 교회는 2000년 역사의 흐름 속에서 교회의 정통성을 굳건히 하면서도 시대의 상황에 따라 늘 새롭게 변화해 왔다”며 “성령께서 새 교황 프란치스코를 통해서 우리 교회를 올바로 이끌어 주실 것”이라고 했다. 전임 교황들이 냉전 종식(요한 바오로 2세), 교회의 근본정신 재확인(베네딕토 16세) 등에 공헌했다면 새 교황은 겸손과 가난, 봉사와 나눔의 정신으로 교회를 이끌 거라는 기대다.

 주교회의 의장인 강우일 주교도 축하 메시지에서 “교황께서 선택하신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은 그분이 원하시는 단순함과 청빈을 잘 드러내고 있다”며 “가난한 이에게 기쁜 소식을, 억압받는 이에게 해방을 선포하시는 평화의 사도가 되어 주실 것을 믿는다”고 밝혔다.

 천주교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 최홍준 회장은 “비유럽, 비이탈리아 출신 사제가 선출됐다. 같은 비유럽권인 한국 신자의 한 사람으로서 신선하다”고 말했다. “가톨릭이라는 용어는 보편적이라는 뜻이 있는데, 그런 이름에 걸맞은 선출인 것 같다”는 얘기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예수회 출신이다. 종교개혁기인 16세기, 개신교가 기존 교회를 부정하고 그 테두리를 뛰쳐나가 개혁을 시도한 데 반해 예수회는 교회 안에 남아 개혁을 도모했다. 그러면서도 교회 건물 바깥 저자 거리로 나가 세상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이웃에 봉사했다. 이런 영성적 특징은 학교 설립을 통한 교육 사업, 신부나 수녀·신학생 등을 대상으로 한 영성수련이라는 활동으로 나타났다.

 예수회 홍보 담당 조인영 신부는 “새 교황이 보다 보편적으로 세상의 흐름을 품으려고 하실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특히 “교황 선출 발표 직후 발코니에 나와 하느님이 자신을 축복하시도록 함께 기도해달라며 베드로 광장의 군중들에게 부탁했다”며 “그만큼 겸손한 분인 것 같다”고 말했다.

 불교계도 축하 메시지를 발표했다. 조계종 자승 총무원장은 “인류의 빈곤과 기아 문제의 해결, 평화와 행복이 가득한 세상을 만드는데 가톨릭이 더 많이 노력하고 기여하기를 요청 드린다”고 밝혔다. 원불교 경산 종법사도 “평화가 가득한 하나의 세계를 만드는 기연이 되기를 기원한다”고 했다.

신준봉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