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의 머물 곳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동양방송에서 인기를 모았던 한운사 원작의 「동경나그네」를 영화화하기 위해서 일본의 현지 「로케」가 진행 중이더니, 공보부는 중지명령을 내린 것으로 전한다.
우리 나라 조선기술자와 일본아가씨와의 사랑을 줄거리로 하는 이 영화는 그 배경이 일본으로 되어있고, 또 일본영화사의 기술협력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일본배우들까지 출연하고 있으므로 일본과의 합작영화로 밖에 볼 수가 없다는 것이 공보부측의 이유다.
지금 일본에서는 영화가 사양산업으로 손꼽힌 지 오래다. TV에 눌리고, 또 폭넓은 「레이저·붐」에 눌려서 왕년의 빛을 잃고있어 탈출구를 찾기에 혈안이다. 그런 발버둥치던 나머지 대형천연색화도 시도해 보았다가, 내용을 순애물로 꾸려보았다가 하며 국내 「팬」의 구미도 맞추며 해외시장을 찾기에 여념이 없는데 그들이 아직도 발을 붙여보지 못한 황금시장이 바로 우리 나라다.
지난 봄, 서울에서 있었던 가「아시아」 영화제에서 그 가능성은 이미 입증된 셈이다. 그때 상영된 몇 편의 일본영화를 보기 위해서 아우성이 났다. 40대 이상은 과거에 대한 향수와 같은 심정에서, 젊은 세대는 이웃에 대한 호기심에서 서로가 앞을 다투었다.
한·일 조약이 조인된 다음으로 일본과의 교류는 각 분야에 걸쳐 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추세다. 이로 미루어 영화의 교류도 미구에 들이닥칠 문제의 하나인바, 이것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하는가는, 영화가 지니는 대중적인 영향력과 아울러 경경히 생각할 수 없을 문제일 것이다.
공보부로서도 합작금지·수입금지의 안이한 금기에만 머무르지 말고 일본영화에 관한 한 미묘한 국민감정을 정지하는 작업의 향방을 세워 「나그네」의 방황이 머무를 곳을 마련해야 할 것 같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