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공격·북핵 다보스 최대 이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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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신뢰구축'을 주제로 스위스의 휴양도시 다보스에서 23일 개막된 세계경제포럼(WEF)의 화두는 이라크 전쟁과 북핵 위기였다. 본회의장인 콩그레스 센터 안에 있는 여러 회의장에서 동시에 진행된 각종 세미나는 물론이고 복도와 휴게실 등에서 참가자들이 나누는 대화의 주제는 전쟁 또는 핵무기가 대부분이었다.

세계의 정치.경제 지도자들은 특히 "이라크 전쟁이 가까스로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세계경제를 다시 주저 앉히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하면서 미국의 전쟁 의지를 성토하는 모습이었다.

스위스의 파스칼 쿠슈팽 대통령은 이날 개막연설에서 "무력 사용은 최후수단일 뿐"이라며 섣부른 이라크 공격에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는 또 "이라크 전쟁이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의 갈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며 이는 나머지 지역에도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북핵 문제에 대해 "북한의 핵 개발은 국제사회에 중대한 위협이 되고 있다"면서 "스위스는 대량살상무기의 확산을 규탄한다"고 말했다.

포럼에 참석한 건설팅업체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는 지난해 10월부터 올 1월까지 유럽과 북미.중남미.아프리카.아시아의 최고경영자(CEO) 9백9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세계경제전망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CEO의 48%가 '테러와의 전쟁'을 세계경제에 대한 중대한 위협으로 꼽았다"고 발표했다.

첫날 세미나에 참석한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모하마드 총리는 이슬람 국가의 지도자답게 미국에 대한 비난 수위를 더욱 높였다. '새 시대의 신뢰의 지배구조'라는 제목의 연설에서 그는 "테러리스트들을 테러로 제압하는 것은 보다 큰 분노만 낳을 뿐"이라고 미국의 대테러 정책을 비판하고, "배후의 원인인 빈곤 등에 대한 근본적 치료만이 테러를 없앨 수 있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포럼에 참석한 이라크 지도자 9명은 '이라크 민주주의의 문제와 전망'을 주제로 논의를 갖기 위해 오는 28일 다보스에서 모임을 가질 예정이다. 주최측에 따르면 이같은 모임은 유엔의 이라크 무기사찰이 재개된 후 처음 이뤄지는 것이다.

한편 2년 전 3천2백명이었던 포럼 참석자는 올해에는 2천3백명으로 크게 줄었다. 그 중 3분의1이 미국인이다. 이들은 미국의 일방주의 정책에 대한 집중 성토에 불편한 심경을 드러내면서도 일면 수긍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미국의 롭 포트먼 하원의원(공화.오하이오)은 "테러 위협에서 자유롭고 번영된 세계를 위해서는 미국이 좀더 많은 대화를 해야 하는 게 사실"이라고 인정하고 "미국에 대한 불만을 경청하러 왔다"고 말했다.

다보스(스위스)=이훈범 특파원 cielble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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