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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투자자…다급해진 SKT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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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SK텔레콤은 투자자들이 곤히 잠잘 시간인 24일 0시58분 이례적으로 공시를 냈다. 경영진이 심야 마라톤 회의에서 결정해 발표한 내용은 "주주들의 우려를 감안해 올해 투자계획을 전면 재검토하고, 발행 주식의 3%를 자사주로 매입하겠다"는 것이었다.

이 회사가 다급하게 주가 부양책을 내놓은 것은 전날 주가가 2년9개월 만에 하한가로 추락했기 때문이다. 투자계획도 국내 증시사상 유례없이 하루 만에 번복했다. 하지만 24일 SK텔레콤의 주가는 더 떨어져 17만8천원에 마감했다.

국내 이동전화 시장의 맏형 격인 SK텔레콤이 흔들리고 있다. 통신시장의 급박한 변화와 회사에 대한 신뢰감 추락에 따라 투자자들이 주식을 내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UBS워버그 증권도 이날 '글로벌 50대 추천 종목' 리스트에서 SK텔레콤을 제외했다.

◇투자자들의 불신=주가 하락의 표면적 원인은 올해 책정된 과다한 투자 규모다. SK텔레콤은 지난해 1조9천6백40억원을 투자했다. 하지만 올해는 지난해 말 밝혔던 것보다 66%나 늘어난 2조4천9백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경영 환경에 큰 변화가 없는데도 한달여 만에 투자자들에게 한 약속을 뒤집은 것이다. 오락가락 고무줄 경영이란 비난과 함께 투자자들에게 돌아갈 이익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면서 투자자들의 믿음이 추락했다.

갑자기 투자 규모를 늘린 데 대해 SK텔레콤 측은 "올 하반기부터 시작할 IMT-2000 서비스 등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불리한 주변 여건=하지만 일부에서는 최근 SK텔레콤에 가해지는 정부.경쟁업체의 전방위 압박 등으로 SK텔레콤의 성장 기반이 잠식되면서 전망이 불투명해진 것을 가장 큰 원인으로 꼽는다.

정통부는 내년부터 이동전화 단일식별번호제.순차적 번호이동성제를 도입키로 최근 결정했다. 이렇게 되면 '스피드 011'이라는 선두 기업의 브랜드 가치가 없어지면서 향후 마케팅 비용의 급증이 예상된다.

정통부는 24일 당정협의에서 식별번호 통합제 등을 도입키로 결정했다. 정통부 고위 관계자는 "이번에 발표한 정책은 통신업계의 장기적 성장을 위해 필요한 것이지, SK텔레콤 주장대로 특정사를 압박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향후 전망도 불투명=LG투자증권 정승교 연구원은 "지금 SK텔레콤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시장 신뢰를 회복할 조치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SK텔레콤의 기업 가치로 보면 지금 주가는 낮은 것이지만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아 당분간 예측이 힘든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SK텔레콤은 과다하게 지출된 마케팅비에 대한 전면적인 재조정과 설비투자의 우선순위를 정해 규모를 조정하는 게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동원증권 양종인 연구원은 "SK텔레콤이 주주가치를 높이는 쪽보다 외부 규제를 방어하는 쪽으로 움직인다는 모습을 보이자 시장이 반응한 것"이라며 "주주가치를 높이기 위한 경영의 일관성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SK텔레콤 측은 갑작스런 통신정책 변화에 대해 불만을 나타내는 한편 자사에 대한 규제강화가 시장논리에 어긋난다는 점을 적극 홍보한다는 계획이다.

김종윤.김준술 기자 yoo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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