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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눈에만 보이는 세계

중앙일보

입력

아이들이 놀이를 할 때는, 낡은 종이 상자 하나도 커다란 성이 될 수 있고 그 밑에 깔아 놓은 버석버석한 신문지는 종종 폭신한 마법의 카페트로 변신합니다. 다 자란 어른들이 가끔 이런 놀이를 해서 보여주면 사람들은 그걸 '시'라던가 '판타지' 혹은 '소설'이라고 부르지요. 그러니 생각해 보면 이야기를 지어내는 이들은 모두, 어릴 적에 세상을 바라보던 신비한 ‘마술의 눈'을 커서도 조금쯤은 간직하고 있는 셈이에요.

그림책『작은 기차』(이상희 옮김, 웅진닷컴)의 작가 마가릿 와이즈 브라운은 특히 더 그 마법의 힘이 강했나 봅니다. 표면상으로는 장난감 기차가 주인공인 이 책은 아주 철저히 어린 아이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있으니까요.

누구의 가방인지 알 수 없는 커다란 여행 가방. 그 위에는 기차가 그려진 선물 상자가 놓여 있습니다. 그리고 페이지를 넘기면 빨강과 검정, 파랑 색깔로 만들어진 장난감 기차가 천천히 여행을 떠나기 시작합니다.

'작은 기차 두 대가 강에 이르렀어요. 서쪽으로 흐르는 강.
칙칙폭폭, 칙칙폭폭, 작은 기차 두 대는 서쪽으로 가는 강을 건너요.'

책을 펴면 좌우로 나누어진 그림 밑에 이런 시적인 문장이 나옵니다. 언뜻 보기에 문장 자체는 노래하기 쉽고 느낌이 아름답다는 것 이외에 별다른 점이 없지요.

하지만 이제 왼쪽과 오른 쪽의 그림을 자세히 한번 살펴 보세요. 한 쪽에는 진짜 넘실넘실 흐르는 강을 건너는 실제 기차의 모습이 그려져 있고, 다른 면에는 엉뚱하게도 목욕탕에서 물이 가득 담긴 욕조 주위를 달리는 장난감 기차가 있지요? 눈치 빠른 독자들은 이미 알겠지만, 이건 장난감 기차를 가지고 놀고 있는 아이가 보는 두 개의 세계를 동시에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장난감 기차가 있는 쪽은 아이의 '눈에 보이는 세계', 실제 기차가 있는 곳은 '마음에 보이는 세계'가 되겠지요.

영화에서 주인공이 상상하는 일들이 실제 화면과 겹치는 것처럼 이 작품도 책만이 가질 수 있는 정적인 특성을 아주 잘 살려서 큰 효과를 내고 있습니다. 또 다른 예를 든다면 기차가 통과하는 어두운 터널은 사실 '언덕'이라고 쓰여 있는 책을 펼쳐놓은 사이이며, 떨어져 내리는 차가운 비는 목욕탕의 샤워기에서 떨어지는 물방울들이에요. 정말 재미있지요?

마음 속의 세계를 보여주는 그림책
이렇게 재치있고 섬세하게 표현된 두 개의 세계는 어느 때는 '나도 이랬었어' 하는 공감을 전해주기도 하고, 또 어느 때는 재미있는 수수께끼를 던져 아이들을 깊이 사로잡습니다. 마치 혼자 숨겨놓은 비밀의 세계를 알아 주는 친구를 만난 것처럼 말이에요. 마가릿 와이즈 브라운의 그림책들이 몇 십년의 시간을 넘어 지금도 사랑을 받는 것은 아마 이런 이유 때문이겠지요? 아이들이 바라보는 세계를 이처럼 꼭 집어 아름답게 말해주는 작가는 참 드물 테니까요.

그림책 『작은 기차』는 마치 자장가처럼 부드럽고 잔잔히, 어른과 아이 모두의 눈에 겨울 날 첫눈 같은 상상의 입김을 불어넣어 줍니다. 그래서, 너무 휙휙 지나가 눈앞에 바로 보이는 결과와 사물들에만 집착하게 되는 요즘, 현실을 넘어 마음의 세계를 보는 아이들의 마법을 가진 이 책이 더욱 반갑게 여겨집니다. (이윤주/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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