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일만에 나타난 안철수, 납득 안가는 논리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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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식
정치국제부문 기자

왜, 서울 노원병을 선택했나.

 안철수 전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동안 야권에서 가장 많이 나온 질문이다.

 11일 귀국한 그에게 자연히 노원병을 선택한 이유를 묻는 질문이 던져졌다. 82일 만에 모습을 보인 그는 “지역주의에서 벗어나 민심의 바로미터인 수도권에서 새로운 정치의 씨앗을 뿌리고자 결심한 것”이라고 답변했다. “새로운 정치를 위해서는 제 몸을 던져서 어떤 가시밭길이라도 걷겠다”고도 했다.

 또 질문이 나왔다.

 -부산 영도에 출마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는데.

 “조금 전 말씀드린 대로 지역주의에서 벗어나….”

 그는 출마선언문과 기자들과의 문답 도중 노원병 출마 이유를 설명할 때 ‘가시밭길’이란 단어를 세 번 인용했다. 부산 영도에 가지 않는 이유를 말할 땐 ‘지역주의’라는 말을 두 번 반복했다. 안 전 원장은 부산 출신이다. 그에 따르면 노원병 출마는 가시밭길을 걷는 것, 고향인 부산 영도에 출마하는 건 곧 지역주의에 기대는 것이었다. 안 전 원장은 지역주의를 ‘연고가 있는 곳(고향)에 출마하는 것’이라고 오역(誤譯)한 듯하다.

 안 전 원장의 설명대로라면 2000년 정치 1번지 종로를 떠나 고향인 부산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노무현 전 대통령, 3선을 했던 지역구인 경기 군포를 버리고 지난 총선 때 고향인 대구에 출마했다 낙선한 김부겸 전 민주당 의원, 새누리당 후보로 광주에 도전했던 이정현 청와대 정무수석이 모두 지역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라는 이상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고향에서 계속 국회의원을 지냈던 박근혜 대통령, 현재의 모든 지역구 의원은 또 뭐가 되나.

 안 전 원장의 측근은 “지역 정치인이라는 틀에 묶일 수 있다고 판단해 부산을 가지 않은 거 아니겠느냐. 고향에 출마해 지역주의에 대항한 것은 과거 정치인이 이미 해본 일이라 그걸 답습하기보단 새 길을 찾으려 했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안 전 원장이 어떤 지역구를 택하든 그건 그의 자유다. 하지만 이 측근의 말대로, 전술적인 판단이었다해도 그리 이해가 되지 않는다. 2000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산에 출마하려 하자 당시 문재인 변호사는 “당선돼도 고작해야 지역 맹주가 되기 십상이다. 종로에서 당선돼 탈(脫)지역 하는 것이 대선에 유리하다”고 말렸다(문재인의 『운명』). 결론은 어떤가. 노 전 대통령은 부산에서 낙선했다. 하지만 정치생명이 끝나긴커녕 질적으로 다른 지지를 받아 2년 뒤 대통령이 됐다.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의 경우 한때 지지율 20%대를 찍었을 때가 있다. 새누리당 강세 지역인 분당에 나섰을 때다.

 안 전 원장은 야권에선 헤비급 선수다. 그런 그가 야당 강세 지역으로 꼽히는 노원병에 출마하는 건 가시밭길을 가는 것이고, 여당의 초강세 지역인 부산에 출마하는 건 지역주의라고 말하는 건 납득이 안 간다.

 앞뒤가 바뀐 것 같아서 말이다. 부산 영도 출마가 가시밭길이고, 야권이 강세를 보였던 노원병에 출마하는 게 지역주의라고 생각하는 게 상식이기 때문이다.

강인식 정치국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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