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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연극인 세남자 국립극장 진출

중앙일보

입력

강론.원영오.양정웅. 이들은 '아직'은 무명인 30대 극작.연출가다. 편의상 대중음악이나 영화의 용어를 빌려오면 인디(독립) 의 리더들이다.

모름지기 우리 문화계에 수용된 인디엔 '반(反.안티) 주류'의 개념이 짙다. 그러나 이 세 사람은 그걸 거부한다. "우리에게 거창한 구호는 어울리지 않는다. 우리는 연극 속에서 뭔가 새로운 흐름, 즉 '넥스트 웨이브'를 지향할 뿐이다."

목표처럼 지금까지 이들의 작업은 충분히 신선했다. 작품의 생산 과정도, 그렇게 해서 나온 작품의 모습도 그랬다. 굳이 이런 경향을 정의한다면 탈장르.탈형식.탈제도의 몸부림으로 요약할 수 있다. 어떤 틀에도 얽매이지 않는 '제 멋대로'였다고 할까. 무대는 독립예술제 등 변방이었다.

이들이 국립극장 무대에 진출한다. '보수연극'의 심장부인 국립극장이 이들의 작품을 불러모아 한바탕 푸닥거리를 하는 것은 정말 파격이다. 17일~2월 17일 한달간 별오름극장에서 열리는 '해외로 진출하는 신진 예술인 3부작' 시리즈다.

첫 주자는 극단 몽골몽골의 대표 강론이다. '마이 올드 자이언트 슈즈(My old giant shoes) '를 선보인다. 의태어같기도 하고 의성어같기도 한 극단명은 강씨가 '몽골리안의 후예'를 자처하며 따온 것이다. 그는 "한국적인 가치를 아시아인과 연대하고 싶은 상징적 의미를 지녔다"고 풀이했다.

'마이 올드 자이언트 슈즈'는 지난해 9월 독립예술제 때 첫선을 보여 매니어들의 주목을 받았다. 유난히 큰 발을 지니고 태어난 한 사내의 환상적 모험담. 그 여로는 옛 실크로드의 여행가들을 따라 아라비아로까지 확장된다.

'예외'에 대한 사회의 편견을 풍자했다. 여기에서는 그동안 이물질이라며 서로 경계를 나눴던 연극.무용.마임.영상 등이 하나로 어울린다. 기발한 탈장르.탈형식의 실험장이다.

이어 극단 노(勞) 뜰의 원영오의 차례다. 이 극단의 이름도 예사롭지 않다. '노'는 노동의 노요,'뜰'은 들(野) 을 뜻한다. 독특한 연극 생산 방식을 함축한다.

원씨는 지지난해 강원도 문막 후용리에 공산(共産) 적인 커뮤니티를 만들었다. 여기서 주민들과 연극으로 교류하며 살고 있다. 이런 '모두스 비벤디(삶의 방식) '는 지난해 국립극장에서 '제방의 북소리'를 공연한 프랑스 태양극단의 그것을 닮았다. 단원들은 하루 대여섯시간 함께 연습을 하고, 나머지 시간엔 각자 사랑을 하거나 산책을 하거나 논밭을 가꾼다.

원씨의 말. "연극을 만드는 공간은 상품을 찍어내는 공장과는 달라야 한다. 구성원 각자의 창의적인 욕구가 어떤 구속없이 드러나 스스로 접점을 찾는 곳이어야 한다. 연극과 삶은 분리될 수 없다."

그의 분신인, 두번째 공연인 '동방의 햄릿'은 이렇게 해서 나왔다. 이 작품은 지난해 국내 처음으로 프랑스 아비뇽 연극제 오프에 나갔다. 결과는 대성공. '햄릿'을 고전적인 복수의 문법으로만 보던 서양인들의 관점을 무화시켜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마지막 주자는 극단 여행자의 양정웅이다. '완전 비주류'에서 성장한 강.원씨와 달리 양씨는 주류의 토양에서 자랐다. 대학로풍 실험극의 산실인 연극실험실 혜화동 1번지 출신이다.

그가 쓰고 연출한 '연 緣 Karma'는 지난해 일본 도쿄에서 열린 제3회 피지컬 시어터 페스티벌에 나가 일본.말레이시아 등 해외 작품을 압도했다.

연극은 인연으로 얽힌 덧없는 인간사를 합축한 부조리적인 이미지극이다. "내 연극은 메시지가 아닌 비논리적인 하나의 양식이며, 그런 비논리 속에 삶의 진실이 있음을 증거한다. "

'해외 진출'을 강조한 이번 기획의 타이틀에서 보이듯이 '강.원.양 트리오'는 진작 국내보다 해외에서 주목받은 특이한 케이스다. 진취적이며 열린 자세가 가져온 성과인데, 이런 흐름도 눈여겨볼 만한 연극의 '넥스트 웨이브'라 하겠다.

'마이 올드 자이언트 슈즈'는 4월 태국에서 열리는 제4회 방콕 프린지 페스티벌에 가며, '연 緣 Karma'는 캐나다.미국 등지의 페스티벌에 도전한다. '동방의 햄릿'은 지난해보다 더 나은 조건으로 아비뇽 연극제에 재초청받았다.

잡초처럼 성장한 이들이 벌써 제도권 연극판을 기웃거린다 해서 현실과 '야합'한 걸까. 아니다. 이들은 여전히 어떤 영역의 안과 밖을 가르지 않는 탈경계선에서 작품으로만 말하는,순수한 열정의 자유인일 뿐이다.

02-325-8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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