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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기다려 늦깎이 입단… 될 때까지 두드렸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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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국립창극단에 들어오자마자 주인공 자리를 맡은 소리꾼 민은경. 지난 7년간 음악 하나를 잡고 부단히 노력하며 기다려온 게 결실을 맺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아무리 노크해도 어떡하나, 뽑질 않는데. 바보 같지만 무작정 기다리는 게 때론 최선이다.”

 누가 보면 참 “답답하다” 할지 모르겠다. 소리꾼 민은경(31)씨 얘기다. 그는 올해 국립창극단 신입으로 입단했다. 근데 단원이 되기까지 무려 7년을 기다렸다.

 무슨 곡절이 있었던 게 아니다. 국립창극단이 지난 7년간 신입 단원 공채 오디션을 치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악 분야가 다 이렇다. 정체돼 있고 젊은 피가 들어갈 틈이 별로 없다. 그래도 30대 초반에 국가대표 소리꾼의 일원으로 합류할 수 있었다는 게 영광스러울 뿐”이라고 말한다.

 민씨의 입단 스토리가 단지 예술분야에만 해당할까. 어쩌면 청년실업 100만 시대라는 2013년 한국 사회에 시사점이 적지 않을 터.

 그는 어떻게 7년을 버텨 바늘 구멍을 통과했을까. 우선 “자기가 원하는 직장의 주변을 서성거려라”라고 조언한다. 민씨 역시 인턴으로 1년6개월 가량 국립창극단에서 활동한 적이 있다. 객원단원이라는 타이틀로 출연한 작품도 서너 개 된다.

 “작은 배역, 지방 공연 가리면 안 된다. 무조건 해야 한다. 그러는 와중에 눈도장도 찍게 되고, 단체 분위기도 알게 되고, 어떤 스타일이 경쟁력이 있는지도 알게 된다. 그게 가장 큰 무기”라고 했다.

 두 번째는 실전 경험이다. 민씨는 퓨전 국악밴드를 결성해 보컬로 소극장 공연에 나서며 무대 경험을 차곡차곡 쌓아왔다. “딱 일이 주어졌을 때 완벽하게 해내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쫄지 않는 게 중요하다. 즉시 전력감이라는 인상을 주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셋째는 “돈 벌이도 병행”하는 거란다. 민씨는 입시 레슨을 하거나 예술학교 강사를 꾸준히 해왔다. “장기전에 들어갈 경우, 금전적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면 흔들리기 쉽다. 꿈을 위해 돈을 벌라”고 말했다.

 그가 이토록 꿈을 놓지 않고 달려올 수 있었던 건, 그만큼 뛰어난 실력이 밑바탕에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실제 그랬다. 그는 국악예고와 중앙대 음악극과 재학시절 두 차례 동아국악콩쿠르에 나가 두 번 다 금상을 수상했다. 2003년엔 임방울 국악제 판소리 부문 장원을 받기도 했다. 국립창극단 김성녀 예술감독은 “소리에 슬픔과 웅장함이 동시에 배어 있다”고 칭찬했다.

 중학교 시절엔 여름방학마다 지리산 자락에 들어가 폭포 아래에서 10시간씩 소리를 익혔다고 한다. 영화·소설에나 나올 법한 목이 쉬어 말 한마디 못할 때까지, 목에 굳은 살이 박힐 때까지 소리를 했다.

 이런 공력 덕일까. 그는 신입이지만 주인공까지 꿰찼다. 윤호진 연출, 김명화 대본, 양방언 작곡 등 스타 창작자가 출동한 국립창극단의 야심작 ‘서편제’에서 어린 송화 역을 맡았다. 2010년 뮤지컬 ‘서편제’에도 출연한 적이 있는 그는 “가슴을 후벼 파는 소리의 진짜 멋을 제대로 풀어낼 요량”이란다.

 ▶창극 ‘서편제’=27∼31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2만∼7만원. 02-2280-4114.

글=최민우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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