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배용의 우리 역사 속의 미소

화해와 상생을 향한 미소 릴레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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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이배용
전 이화여대 총장

탈춤은 탈을 쓰고 이야기도 풀어가고 노래도 부르고 춤을 추면서 공연하는 연극이다. 우리나라에는 상고시대부터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있는데 지금까지 고성 오광대놀이, 강릉 관노탈놀이, 북청 사자놀이, 양주 별산대놀이, 황해도 봉산탈춤, 하회별신굿 등 다양한 탈춤의 유형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중 가장 많이 알려진 하회별신굿에서 벌어지는 탈춤은 오늘날까지 전승되면서 하회마을의 옛 모습을 그대로 보존해 왔다는 데 의미가 크다.

 별신굿은 특별한 큰 굿을 뜻한다. 실제로 탈춤판이 열리면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고 억눌렸던 일상생활에서 탈피해 자유로움의 구가, 그리고 공동체적인 협력과 소통의 마당이 형성된다. 이날은 계층이나 신분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대로 양반도 희롱하고 사회모순을 비판해도 누가 시비 거는 사람이 없다. 그럼으로써 가슴속의 답답함을 분출하고 삶의 애환을 호소하면서 관객들과 공감대를 형성해 한바탕 춤판이 벌어진다.

국보 제121호 ‘하회탈’ [사진 하회별신굿탈놀이 보존회]

 양반들도 적극 협력해 별신굿에 소요되는 자금을 대주고 이날만큼은 못 본 척 관여하지 않는다. 엄격한 계급사회라도 일방적으로 억압만 해서는 서로가 다 함께 살 수 없다는 상생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한편으로는 마음껏 풀어주지만 선을 넘지 않는 자유로움 속의 절제의 질서가 이루어지는데 바로 이러한 역지사지의 정신이 전통사회를 안정되게 유지할 수 있는 가장 큰 원동력이 되었다고 여겨진다.

 하회탈은 11개가 전해지는데 주지2개, 각시, 중, 양반, 선비, 초랭이, 부네, 백정, 할미, 미완성의 이매탈이 있다. 이 중 남성탈은 턱이 자유롭게 움직이지만 부네, 할미, 각시는 턱이 고정되어 있다.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여성에 대한 차별의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다. 사진 속에 보이는 양반탈의 부드러운 미소, 부네탈의 매혹적인 미소, 파안대소하는 중의 미소, 이매탈의 순박한 미소는 우리들의 마음에 여유를 찾게 한다. 바로 이러한 모습들은 각기 다른 삶을 살지만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주고 화해와 상생으로 승화시키는 우리 역사 속의 멋진 미소의 명장면이다.

이배용 전 이화여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