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란티노 감독 만나 배우 인생 첫 악역 ‘모태 악당’ 실감 연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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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소니 픽쳐스

1990년대 할리우드는 남성 스타들의 전시장이었다. 브래드 피트는 로버트 레드퍼드를 연상시켰고, 팀 버튼의 페르소나가 된 조니 뎁은 우울하면서도 연민을 자극하는 눈빛으로 다가왔다. 긴장감과 쾌활함이 공존하는 윌 스미스, 고탄력 피부의 희극지왕 짐 캐리, 사랑스러운 루저 애덤 샌들러, 여기에 톰 크루즈의 미소는 세계 최강이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리어나도 디캐프리오(39)가 누렸던 스타덤만큼은 아니었다. ‘타이타닉’(1997)은 한 편의 영화를 넘어 신드롬이 됐고, 디캐프리오는 스타를 넘어 어떤 현상이 됐다.

어떻게 보면 그는 정확한 타이밍에 정확한 장소에 있었던 행운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 하나의 캐릭터로 영화 산업의 정점에 오르는 건 단지 운으로 가능한 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타이타닉’ 때문에 동시대 배우들 중 단연 최고였던 그의 재능이 과소평가되는 느낌마저 있다. 차라리 ‘타이타닉’이 없었다면 디캐프리오에 대한 평가는 훨씬 더 정확하고 공정했을지도 모른다.

그 누구보다 빛나는 외모를 지녔지만 그를 일반적인 청춘 스타 범주에 넣기 망설여지는 건 그의 이력이 지닌 만만치 않은 깊이 때문이다. 또래 배우들이 TV 시트콤에서 잔재주를 인정받을 때 그는 ‘디스 보이즈 라이프’(1993) 같은 영화에서 로버트 드니로와 ‘맞짱’을 떴고 ‘길버트 그레이프’(1993)로 오스카 후보에 올랐다. ‘배트맨’ 시리즈의 로빈 역을 거부한 후엔 ‘토탈 이클립스’(1995)에서 시인 랭보가 됐다. 곧이어 셰익스피어 비극의 주인공인 로미오가 됐으며 ‘마빈스 룸’(1996)에선 메릴 스트리프와 어깨를 견주었다. 이 모든 것이 스무 살 전후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때 찾아온 ‘타이타닉’은 그를 단숨에 출연료 2000만 달러 클럽 멤버로 승격시켰지만 한편으론 독이었다. 그는 전 세계가 아는 스타가 됐고 곧 나르시시즘에 빠졌다. ‘비치’(2000)는 그 명백한 증거였다. 그는 서른 살도 안 돼 갈 길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이때 현명하게도 그는 자신의 얼굴을 망가뜨리기로 결심한다. 그에게 새로운 마스크를 선사한 사람은 마틴 스코세이지였다. ‘갱스 오브 뉴욕’(2001)부터 시작된 ‘배우 인생 2기’는 그가 거장들에게 단련되는 시간이었다. 스티븐 스필버그, 리들리 스콧,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그를 찾았고, 특히 전기 영화 ‘애비에이터’(2004)에서 맡았던 하워드 휴스 역은 의미심장했다. 강한 카리스마의 아웃사이더이며, 화려한 수퍼스타이며, 불안한 천재였던 휴스. 그는 바로 디캐프리오였다.

‘장고: 분노의 추적자’(국내 개봉 3월 21일)로 그는 7일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문제적 감독 퀜틴 타란티노와의 만남에서 배우 인생 처음으로 악당이 된 그는 마치 모든 족쇄에서 완벽하게 해방된 듯 거침없이 내지르고 무시무시하게 덤벼든다. 그의 캐릭터엔 미국의 폭력성을 상징하는 듯한 섬뜩함이 있으며 여기엔 광기와 연민마저 결합된다. 픽션의 캐릭터를 마치 실존했던 인물처럼 생생하게 부각시킨다. 순식간에 끓는점까지 가열됐다가 급속하게 냉각되는 배우. 그는 언제부터 이토록 복합적이고 다층적이며 힘 있는 배우가 된 걸까. 그의 차기작이 5월 개봉하는 ‘위대한 개츠비’라는 사실은 더욱 우리를 가슴 뛰게 한다.

김형석 영화평론가 mycutebir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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