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버지는|마종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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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내 아버지는
연세가 쉰하고 여섯,
아직 아직도 젊으시다.
추운 밤, 길목에 서서
늦은 누이동생
애인처럼 기다리신다.
내 아버지는
머리가 훤하게 반백색,
아직 아직도 젊으시다.
오늘쯤 눈이 오려나 흐린 날씨면
말없이 브람스에 귀 기울이네.
(그때 메뉴힌은 열 다섯 살,
카페가 있고 땅콩과 홍차,
젊음을 보낸 나라는 하늘이 흐렸지)
문득 어머니를 불러 앉히시고

<그렇지?>
처음 만난 부끄러움 같이
서로 눈감고
브람스에 귀 기울이네.
첫눈이 온다.
어두운 초저녁에 첫눈이 온다.
나는 친구랑 밤을 거닐고
남은 아버지,
혼자서 술잔이나 기울이신데,
아버지 젊으실 땐
아니, 참, 아직 젊으시지.

<장남 종기씨는 연세대 의대 출신이며 시인. 금년 6월 도미, 9월엔 그곳에서 결혼하고 의학공부를 계속하고 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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