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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재즈, 그리고 영화 ‘리빙 하바나’

중앙일보

입력

얼마전 국내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이라는 영화가 공개된 적 있다. 쿠바 출신 음악인들 삶을 다큐멘터리로 담아낸 작업이었다. ‘리빙 하바나’라는 영화가 소개된다. ‘리빙 하바나’ 역시 쿠바 출신 음악인이 등장하고 있다. 그런데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과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 영화엔 자신의 음악적 열정과 국가 체제 사이에서 갈등하는 예술가가 나오는 것이다.


아마도 ‘리빙 하바나’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보다는 ‘백야’에 가까운 영화가 아닐까 싶다. 실제로 영화에선 음악 비중이 크긴 하지만 그외에도 사랑과 가족이라는 전형적인 테마가 중시된다.

‘리빙 하바나’는 아투로 산도발이라는 재즈 음악인에 관한 영화다. 만약, 이 음악인에 대해 알고있는 사람이라면 영화는 무척 흥미로울 터다. 아투로 산도발은 쿠바 출신의 트럼펫 연주자. 미국 재즈의 영향을 많이 받은 그는 쿠바 특유의 리듬감과 폭넓은 음역을 자랑하는 연주를 들려줬다. 1980년대 이후 미국 음악계에서 신화적 존재로 인정받았다.

영화에서 배우 앤디 가르시아는 아투로 산도발 역할을 맡았는데 평소 예리한 모습으로 기억되었던 앤디 가르시아는 영화를 위해 몸무게를 늘이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무대에서 공연이 끝난 뒤 연주자인 아투로 산도발은 미국 대사관으로 향한다. 쿠바 출신인 그는 망명을 위해 대사관으로 향한 것. 아투로는 인터뷰 도중 자신의 과거를 회상한다. 마리아넬라라는 여인을 만난 아투로는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이미 결혼에 실패한 경력이 있는 마리아넬라는 아투로와의 만남을 두려워하지만 그의 트럼펫 연주를 들은 뒤 좋아하는 마음이 생긴다.

결혼한 두사람은 행복한 살림을 꾸리지만 생활이 그리 순탄치 않다. 쿠바 정부의 억압적인 정책은 음악인 아투로의 삶을 가로막는 것. 미국으로 떠나고자 결심한 아투로 산도발은 가족을 설득하기 시작한다.

‘리빙 하바나’는 음악영화지만 가족드라마의 구색을 갖춘다. 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아투로 산도발이라는 음악인의 역경을 되짚어간다. 그는 조국 쿠바를 사랑하지만 더 이상 그곳에서 활동적인 연주를 할수 없는 처지가 된다. 환경은 열악하고, 정부 간섭은 음악인의 숨통을 조여든다. 여기서 그는 몇가지 딜레마를 껴안는다. 첫째는 가족 내부의 갈등. 아내는 쿠바 혁명을 지지하면서 정책에 대해 적극적인 찬성의 입장을 표한다. 당연히 음악가의 이상과 상충된다.

둘째는 음악적 열정과 조국애 사이의 갈등. 공연마다 정부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아야 하는 처지가 되자 그는 국외 망명을 계획하게 된다. ‘리빙 하바나’는 할리우드가 좋아할만한 몇가지 조건, 다시 말해서 체제의 우월성이라는 문제와 자유로운 예술혼, 그리고 가족드라마가 기묘하게 무게중심을 잡는 구도를 취한다. 아직 타계하지 않은 음악가의 전기영화라는 점도 이렇듯 영화가 지니는 큰 장점에 비하면 작은 티끌에 지나지 않는다.

‘리빙 하바나’는 온전하게 음악을 위한 작업이다. 쿠바의 전통음악에서 재즈에 이르기까지 호화로운 선율은 보는 이의 이목을 즐겁게 한다. 디지 길레스피 등 현존했던 음악인에 관한 언급도 재치있다. 영화를 만든 조셉 사젠트 감독은 주로 TV드라마와 시리즈물을 연출했던 인물로 ‘리빙 하바나’ 역시 대중적인 감각으로 포장해놓았다.

실존하는 음악인에 관한 지식이 전무해도, 가족과 조국, 그리고 음악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고 충돌하는 어느 인물의 이야기엔 공감이 가는 구석이 있을 터다. 게다가 넋이 나간 듯 트럼펫을 불어대는 이 음악가는 가족 중 일부는 쿠바에 남겨놓은 채 국외로 무거운 발걸음을 떼어야 하는 처지다. 이건 거의 신파에 가깝다.

영화엔 눈에 익은 배우와 출연진이 여럿 있다. 마리아넬라 역의 미아 마에스트로는 영화 ‘탱고’의 히로인이었고, 에밀리아 역의 글로리아 에스테판은 팝가수로 더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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