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3 얼마에 사셨나요, 당신도 혹시 호갱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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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4일 서울의 한 이동통신 대리점의 유리벽면에 ‘갤럭시S3 1000원’ ‘아이폰5 1000원’ 등의 광고 전단이 붙어 있다. [사진 KT]

‘1000원 vs 72만4000원’.

 스마트폰 갤럭시S3 롱텀에볼루션(LTE) 모델의 실제 구입 가격이다. 어떤 사람이 1000원 주고 산 물건을 다른 사람은 72만4000원이나 주고 샀다. 이 제품의 출고 가격은 99만4000원. 이동통신 3사의 순차적인 영업정지가 이달 13일 KT를 마지막으로 끝나는 것에 맞춰 보조금 경쟁이 과열되면서 벌어진 일이다.

 6일 이동통신 업계에 따르면, 스마트폰 관련 온라인 게시판에는 전날 밤 ‘갤럭시S3를 1000원의 할부원금에 판매한다’는 ‘스팟(일정시간 떴다 사라지는 광고성 글)’이 등장했다. 할부원금은 스마트폰의 출고가에서 제조사와 이통사가 지급하는 보조금을 제외한 금액이다. 소비자가 실제로 단말기를 사려고 낸 돈이다. 일부 오프라인 매장에서도 최근 ‘오늘의 행사 갤럭시S3 1000원’이라는 광고 문구가 내걸리기도 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정한 보조금 상한선은 27만원. 갤럭시S를 1000원에 팔았다면 70만원 이상의 보조금을 더 지급했다는 뜻이다.

 지난해 9월 추석 연휴를 전후해 당시 최신 제품이던 갤럭시S3가 17만원에 팔리는 등 보조금 과다 지급 경쟁이 벌어지자, 방통위는 올 들어 이통 3사에 영업정지 조치를 내렸다. LG유플러스(1월 7~30일)를 시작으로, SK텔레콤(1월 31일~2월 21일)·KT(2월 22일~3월 13일) 순으로 신규 가입을 받지 못하는 제재를 받은 것이다. 그런데 순차적 영업정지 기간 중 오히려 보조금 경쟁이 과열됐다. 한 곳이 신규 가입자를 받지 못하는 틈을 타 가입자를 빼내기 위한 불법 보조금 규모가 더 급증했다. 올 1월만 해도 갤럭시S3에 대해 50만~60만원을 지급하던 보조금은 최근에는 80만~100만원까지 올라갔다.

 휴대전화 수요가 정점을 이루는 졸업·입학 시즌에 영업정지로 손발이 묶인 KT가 특히 몸이 달았다. 다른 이통사처럼 보조금 투하 경쟁을 벌일 수 없는 KT는 이날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에 대해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이현석 KT 세일즈기획단 상무는 “지난 주말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가 대당 80만~100만원에 달하는 불법 보조금을 투입하고 있다”며 “현재 이동통신 시장은 규제가 통하지 않는 공황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비정상적인 과열 양상이 시장 전체의 혼란을 야기하고 국가 경제 전체에 악영향을 미친다”며 방통위가 이들 업체를 처벌해줄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이에 대해 LG유플러스 측은 “앞서 경쟁사가 영업정지됐을 때 KT가 먼저 과도한 불법 보조금을 지급하며 시장을 과열시켰다”고 말했다. SK텔레콤 역시 “이통 시장 과열을 부추겼던 KT가 입장을 바꾼 것은 타사의 영업정지 동안 확보한 점유율을 지키겠다는 목적으로밖에 이해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이통사의 진흙탕 싸움에 결국 골탕 먹는 쪽은 소비자다. 과잉 보조금이 시장에 넘쳐나면서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스마트폰을 제값 내고 구입하면 호갱”이라는 분위기가 퍼져 있다. ‘호갱’은 ‘호구’와 ‘고객’을 합친 신조어로, 어수룩한 고객을 뜻한다. 일부 오프라인 매장은 스마트폰의 가격 체계에 익숙하지 않은 고객들에게 약정할인금이 기기 할인금액에 포함된 것으로 속여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에 스마트폰을 판매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결국 감독 당국인 방통위가 최근의 혼탁한 시장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 통신사 관계자는 “방통위 공무원들이 조직개편에 온 신경을 쏟고 있는 상황에서 보조금에 신경 쓸 틈이 있겠나”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방통위 관계자는 “5일 저녁 이통 3사 임원들을 불러 시장 안정화를 요청하는 등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이통사에 ‘약발이 먹히는 수준’으로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모두 잘못했다는 식의 순차적 영업정지가 아니라 과열 상황을 유발한 한 곳만 영업정지를 시켜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지키기 어려운 27만원의 보조금 상한선을 폐지해 정상적인 가격 경쟁을 벌이도록 허용하거나 반대로 불법 보조금을 쓰면 경영진을 형사처벌하는 식의 극약 처방을 도입해야 비정상적인 경쟁이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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