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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첫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겨울은 어느곳으로 오는가?지리적으로 보면 북쪽일수록, 그리고 높은 고지일수록 겨울은 먼저 찾아온다. 동부전선의 대성산엔 32「밀리」나 눈이 내렸고 지리산중턱에도 첫눈이 내렸다. 그리고 서울에도 첫눈. 겨울은 이렇게 높은곳에서 아래로, 또 북쪽에서남쪽으로 서서히하강해온다.
그러나 경제적으로보면 겨울은 가난한 살림살이의 아궁이로부터 먼저 찾아온다. 땔것과 입을것이 없는 도민들의 마음에는 한달이상이나 더 빨리 추위가 몰아치는 것이다. 연탄걱정, 김장걱정, 월동의 생활고가 눈보라치기 시작한다. 아직 국화가 다피지도 않았는데 마음은 한점의꽃도 없는 설원이다.
그렇다. 자연속으로 오는 겨울은 높은지대에서 낮은 지대로 내려오지만, 생활의 겨울은 거꾸로낮은 지대(서민)에서 높은지대로 이행해가는것이다. 해마다겨울철이되면「연탄난」이 첫눈보다먼저 첫 인사를 하고 마중을 나왔으나 금년에는 첫눈만이 아니라, 연료난 역시 몇달을 앞서고있다.
원래「첫눈」이라고 하는 것은 낭만적인 정취가 있는 것이다. 잿빛하늘속에서 문득 휘날리는 하얀 눈송이를 보면 야릇한 회억의 정에 싸인다. 누구는 첫사랑을 생각할 것이다. 누구는 어린시절의 고향을 생각할 것이다. 누구는 또 눈발속에 사라진 젊은 날들을, 그리고 뜻하지 않은다정한 친구가 방문을「노크」하고 나타나는 작은 기적도 생각해 볼 것이다.
첫눈이 내리는것을보면 현실보다도 환상적인일에 젖는다. 그런데, 이제첫눈을 보는감오도 시속을따르는 것같다. 첫눈은 환상이아니라 냉엄한현실-. 동화가아니라 때묻은 생활의 가계부이다.
첫눈을 보고 그들은 이미 고경을생각지는않을것이다. 밤을굽고화롯가의할머니를연상하지는않을 것이다. 쌀쌀하면서도 순수했던 첫사랑의연인을, 무릎을 맞대고 시와인생을 말하던 감격의 젊은모습을 생각지는 않을것이다.
무엇을 생각하는가?첫눈은 구멍이 숭숭뚫린 연탄이아니면 누더기의 이불들… 그렇다, 겨울은 가난한자의 마음속으로 먼저찾아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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