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샘] 한국영화, 미국 개방압력 피하려면

중앙일보

입력

지난해 말 프랑스 문화계에 작은 소동이 일었다. 프랑스 최대의 미디어그룹인 비방디 유니버설의 장 마리 메시에 회장의 발언때문이다.

그는 "프랑스의 문화적 예외성은 죽었다"고 주장했다.

한 마디로 프랑스 영화에 정부가 지원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당연히 영화계는 물론 국회에서까지 비난이 빗발쳤다. 특히 메시에 회장이 최근 헐리우드 영화사인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인수했기때문에 그의 주장은 미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으로 치부됐다.

프랑스는 자국영화를 보호하기 위해 보조금을 지급하고 TV 방송사는 방영하는 영화의 40% 이상을 프랑스 영화로 편성해야 한다.

특히 영화를 오락이 아니라 문화의 범주에 넣는 프랑스 지식인들은 영화가 할리우드에 종속되는 걸 원치 않고 있다. 그런데 메시에 회장의 발언이 아니더라도 최근들어 프랑스의 '영화쇄국정책'에 대해 안팎으로 비난의 목소리가 많은 모양이다.

프랑스의 고민은 곧 한국의 고민이기도 하다. 한국은 스크린쿼터제(한국영화 의무상영제도) 라는 보호망이 있다. 하지만 최근 한국영화 시장 점유율이 40%내외를 유지하면서 이 제도의 철폐를 요구하는 미국의 목소리가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호시탐탐 시장 개방을 노리는 미국으로서는 이제 자생력을 키웠으니 문을 열라는 논리를 언제든 들이밀 태세다.

여기다 최근 극장들이 스크린쿼터제를 문제삼으려는 분위기라고 한다. 현재 외국영화는 영화사와 극장이 6대4로 몫을 나누지만 한국영화는 5대5로 분배가 돼 극장이 수입을 더 많이 갖는다. 이에 대해 근자에 제작자들이 시정을 요구하자 극장들이 그러면 한국영화를 의무적으로 상영하는 제도를 없애자고 나온다는 것이다.

내외환경으로 볼 때 이래저래 자국영화산업을 지키고 키워나가기가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대책은 뭘까? 프랑스처럼 자국 영화 산업을 지키려는 나라들과 연대하고 프랑스 지식인들처럼 뜻있는 이들의 동참이 필요하다.

경제논리가 있는데 극장에 대해서도 마냥 '애국주의'를 강요할 수는 없을 거다. 제도적인 보완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또 하나. 영화는 곧 자국의 문화라고 느끼는 이들이 늘어나도록 수준높은 영화가 많이 생산돼야 할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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