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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업주부들이 뿔난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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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신성식
사회부문 선임기자

“국민연금을 계속 넣을까요, 탈퇴할까요?”

 올 들어 주변에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다. 질문하는 사람은 40, 50대 중년 남성들. 국민연금이 괜찮다고 해서 전업주부인 아내가 들었는데 앞으로 어찌했으면 좋을지를 묻는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기초연금 공약 실행 방안에 국민연금을 끌고 들어가면서 벌어진 일이다.

 국민연금은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제도다. 선진국보다 길게는 100년 늦게 시작하면서 좋은 점을 골고루 담았다. 2004년 국민연금 폐지 운동이 한창일 때도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부인을 가입시켜라”고 권유했고 두 달 전까지도 그리했다.

 하지만 인수위 안이 나오면서 그런 권유가 머쓱해졌다. 소득 하위 70% 노인은 국민연금이 없으면 기초연금으로 20만원을, 국민연금이 있으면 14만(가입기간 10년)~20만원(40년)을 받는다. 전업주부는 보통 월 9만원가량의 연금보험료를 내며 10년 정도 가입한다. 65세가 되면 기초연금으로 14만원을, 61세 이후에 국민연금 16만4800원을 받게 된다. 둘을 합하면 국민연금이 없는 사람보다 10만원 남짓 많다. 하지만 10년 동안 낸 돈을 따지면 남는 장사처럼 보이지 않는다. 애들 교육비다 뭐다 해서 한창 돈이 많이 들어갈 때 허리띠를 졸라맨 대가 치고 다소 허망해 보인다. 물론 오래 살면 국민연금 가입이 더 유리하다. 다치면 장애연금, 사망하면 유족연금이라는 안전망 혜택도 본다.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서, 이미 연금에 임의가입했다면 10년을 채우는 게 낫다. 그렇게 말은 하지만 기초연금이 끼어들지 않았을 때에 비하면 권유의 강도가 떨어진다. 현재 임의가입을 고려 중인 경우라면 더 그렇다. 국민연금만 따지면 10년 낸 돈의 4.26배를 노후에 받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권할 만하지만 기초연금이 끼어들면서 판이 헝클어졌다. 다만 전업주부 가구가 노후에 상위 30%에 속하면 기초연금이 끼어들어도 상황이 달라지지 않아 임의 가입하는 게 분명 유리하다.  

 국민연금은 험난한 길을 걸어왔다. 1999년 도시 자영업자로 확대할 때는 반발 때문에 총리가 나서 사과했다. 2004년에는 ‘국민연금 8대 비밀’ 파동에 휩싸였다. 그런 천덕꾸러기가 주부들이, 서민층 자영업자가 제 발로 찾아오는 인기 상품이 됐다. 이런 인기를 누린 지 3, 4년밖에 안 됐다. 그런데 5년도 못 가서 또 흔들리고 있다. 그것도 새 정부가 나서 흔들고 있다. 국민연금공단 홈페이지에 항의가 빗발치고 있다. 아무리 나라가 애를 써도 국민들의 노후를 100% 보장할 수는 없다. 100세 시대 준비는 결국 개인의 몫이다. 개인이 잘 준비하게 멍석을 까는 게 나라가 할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전업주부들의 임의가입 열풍은 정말 반가운 일이다. 20만 명이 넘게 가입했다. ‘국민연금이 좋다더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보험료를 제대로 내지 않던 서민층 자영업자들이 스스로 연금공단 지사를 찾는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이런 흐름을 이어갈 수 있게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이들의 의욕을 꺾어서는 곤란하다. 한번 꺾이면 되살리기 힘들다. 아니 불가능할지 모른다. 전업주부보다 자영업자들이 더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다.

 국민연금이 명실상부한 전 국민의 노후 안전판이 되려면 갈 길이 멀다. 20년 성실하게 부은 사람도 평균 83만원의 연금을 받는다. 부부의 최소 노후생활비(185만원, 보건사회연구원 조사 )에 훨씬 못 미친다. 보험료를 제대로 내지 않는 예외자들이 많아 흔들림 없이 가더라도 2030년에 노인의 60~70%만 연금을 받는다. 인수위는 ‘기초연금과 국민연금 통합 운영’이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 너무 집착해 이런 괴물 같은 안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기초연금 재원의 30%를 국민연금에서 충당하려다가 반발을 사더니 국민연금을 물고 들어가 난수표 같은 안을 내놨다. 국민연금이든 근로소득이든 따지지 말고 소득(재산 포함)이 낮은 사람에게 기초연금이 많이 가게 하면 될 일이다. 더 이상 전업주부들을 화나게 해서도, 국민연금을 흔들어서도 안 된다. 국민연금이 흔들리면 정권이 흔들릴 수도 있다.

신 성 식 사회부문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