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 속 들어간 50대 대기업 직원, 못질 하자…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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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33분에 1명꼴로 목숨을 스스로 끊는다고 한다. 인구 10만 명당 33.5명, 전체 사망자 100명 가운데 6명꼴이다. 이런 시대를 반영하여 우리 사회의 한 편에서는 ‘웰다잉(well-dying)’이 새로운 화두로 떠오른다. ‘가상 임종체험’은 인간의 이런 근원적 물음에 대한 하나의 해답을 제시하고자 만들어진 이벤트이다.

영정사진 찍으면서 얼굴에 장난기 사라져

1월 4일 가상 임종체험 행사가 치러진다는 서울시 영등포구 효원힐링센터를 찾았다. 이날 참가자는 삼성전자서비스㈜ 경원지사 소속의 임직원 30여 명. 40~50대의 중장년이 대부분으로 연수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참여한 것이라고 했다. 마지못해 맞는 죽음(?)이라서 그런지 참가자들의 얼굴에 처음엔 장난기가 느껴졌다. ‘저승길’을 동행할 길벗의 태도치고는 진지한 모습이 아니다.

그러나 막상 영정사진을 찍기 위해 카메라 앞에 서고부터는 거짓말처럼 그들의 얼굴이 돌처럼 굳어졌다. 영정사진 촬영 후 강의실에서 죽음에 이론수업이 곧바로 이어졌다.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영정사진들이 인화돼 강의실 입구에 하나 둘 진열됐다. 각자가 관으로 들고 갈 사진들이다.

참가자들이 강의실을 나서자마자 입구에는 조금전에 찍었던 영정사진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각자 영정사진을 찾은 이들은 같은 건물 5층에 있는 입관(入棺)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들 앞에 검정 도포와 갓을 차려입은 저승사자가 길을 인도한다.

유언장 작성 시간, 여기저기서 한숨 소리

1m90㎝×50㎝×35㎝의 오동나무로 짠 궤짝 수십여 개가 가지런히 놓인 채 그들을 기다린다. 관이다. 방안 자욱하게 풍기는 향 냄새, 맨 앞쪽에는 조화들이 기립하고 있다.

참가자들은 할 말을 잃은 표정이 역력했다. 참가자들 모두 각자 누울 관 옆에 영정을 세우고 수의를 갈아입는다.

이어진 유언장 작성 시간. “날짜와 서명을 남기면 그때부터 법적 효력이 발생한다”는 김기호 대표의 설명을 듣고 강의실 분위기가 더 숙연해진 듯했다. 유언장을 앞에 놓고 펜을 들고 한참을 고민하는 사람, 단숨에 원고지를 빼곡히 채워내려 가는 이도 있다.

유언장 작성 30분쯤 지났을까. 갑자기 예상치 못 한 상황이 발생했다. 흐느껴 우는 사람, 어깨를 들썩이며 울먹이는 사람이 있다. 개중에는 눈물이 범벅이 돼 자리를 뜨는 참가자도 보였다.

“자, 이제 그만 떠날 시간입니다.” 김 대표의 무심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 수의를 입은 참가자들은 감정을 가라앉히기 위해 잠시 명상에 잠긴 뒤 관속으로 들어갔다. ‘쿠~웅’ 관 뚜껑이 하나 둘 닫히고 ‘쾅! 쾅! 쾅!’ 망치질 소리가 이어졌다. 곧이어 ‘두두둑! 두두둑!’ 관 위로 흙이 뿌려지는 소리가 들린다. 죽음이다.

10여 분이 흘렀을까? 관의 입구가 열렸다. 몸을 옴짝달싹할 수 없게 만든 비좁은 관 때문인지, 어둠에 익숙해진 탓인지 사람들의 표정이 정말 넋이 나간 것 같다. 관이 열리는 순간 벌어진 작은 틈을 통해 가느다란 빛이 들어오는데, 이 순간 영화 필름 감듯 자신의 생을 되돌아보는 임사(臨死)를 경험하게 된다고 김 대표는 설명했다. 하지만 이날 참가자 가운데 이를 체험한 사람은 드문 듯했다.

관에서 나온 뒤 “가족의 중요성 깨달아”

길지 않은 임종체험을 통해 이들은 무엇을 얻었을까? 다양한 교훈이 있겠지만, 공통적인 것은 ‘가족의 사랑’인 듯하다.

방승환(35) 대리는 “관 속에서 가족 생각이 많이 났다. 아내와 아이들 걱정이 앞섰다. 정말 내가 어느 날 이렇게 갑자기 죽는다면 인사도 못하고 이별하겠구나 하는 생각에 눈물이 핑 돌았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서비스 경원지사장 윤기현(53) 상무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유서 제목이 ‘내 생애 마지막 쓰는 편지’였다. 과거 일들이 스쳐 지나갔는데 가족에게 후회와 미안함 반, 고마움 반이었다”고 말했다. “관에서 다시 나오는 것은 ‘리필 인생’이므로 신혼 때 같은 마음으로 집사람도 대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그는 “죽음은 내 인생 최고의 멘토가 아니겠느냐”는 소회도 덧붙였다.

임사체험은 문제 청소년이나 위기에 처한 가정 등을 치유하는 효과도 크다. 이혼하기로 결심한 부부가 입관체험을 한 뒤 사이가 좋아지고, 자살하려는 이들이 다시 한번 인생을 살고자하는 경우도 있다.

세계적 고승 달라이라마는 “죽음을 제대로 맞고자 한다면 제대로 사는 법을 배워야 하며, 평화로운 죽음을 희망한다면 우리의 마음과 삶 속에 평화를 일구어야 한다”고 말했다. 맹독이 약이 되듯, 임종체험이 삶의 의욕을 되살리는 신비한 치유제가 될 수 있음을 설파하는 말이다?

최재필 기자
사진 주기중 월간중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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