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일본은 책임 있게 과거를 직시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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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어제 제94주년 3·1절 기념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일본에 적극적인 변화와 책임 있는 행동을 촉구했다. 침략의 과거사를 직시하고 그에 대해 책임지는 자세를 취하라는 뜻이다. 최근 일본의 심상찮은 우경화 흐름 속에서 새 정부 최고 지도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적절한 지적이었다.

 우선 일본은 패전 이후 68년이 다 되도록 왜 우리에게 아직도 그런 말을 들어야 하는지 스스로 되돌아봐야 한다. 그동안 일본 우익은 마치 스스로 전쟁의 피해자인 양 호도하며 침략에 대한 반성을 자학(自虐)이라고 폄하해 왔다. 최근엔 노골적으로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일본 정치인들도 그에 편승하거나, 때로는 앞장 서서 그런 바람을 일으켰다. 이게 침략의 피해자인 우리에겐 도발로 비치는데도 그들은 아무 거리낌이나 주저함이 없다. 종군위안부, 독도, 역사교과서 등 일본이 풀어야 할 여러 문제는 근본적으로 그들의 침략전쟁의 유산 아닌가. 일본은 가해자로서 이를 책임지고 해결하기는커녕 되레 피해자를 자극하고 있다. 박 대통령의 말대로 가해자와 피해자의 입장은 천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의 같은 추축국(樞軸國)이자 전범(戰犯) 국가이면서도 유럽의 존중 받는 구성원으로 복귀한 독일과 늘 비교돼 왔다. 두 나라의 결정적인 차이는 역시 과거사에 대한 성찰이다. 독일은 패전 후 철저한 반성과 책임 있는 처신을 했지만, 일본은 그렇지 못하다.

 어제 박 대통령의 기념사가 나온 직후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상은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면서…”라는 애매한 표현을 썼다. 양국의 분명한 입장차를 기정사실로 서로 인정하고 넘어가자는 투다. 이는 과거사를 진정성 있게 반성하려는 자세로 볼 수 없다.

 한·일 양국이 미래지향적인 우호관계를 다지려면 일본이 먼저 역사에 대한 냉철한 자기성찰을 해야 한다. 과거를 정직하게 직시하지 않는 나라가 과연 진정한 미래의 동반자 자격을 갖췄다고 볼 수 있나. 일본은 책임 있게 과거를 직시하고 용기 있게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