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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취임사 반드시 지키는 대통령 되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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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취임사는 국민에 대한 대통령의 가장 실제적인 약속이다. 대선 공약은 표를 얻으려는 정치성이 들어 있어 100% 약속으로 보기 어렵다. 반면 취임사는 국민과 세계 축하사절 앞에서 신성하고 일관된 봉직(奉職)의 약속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가치의 차원이 다르다. 대통령들은 이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했으며 상당 부분 지켰다. 그러나 일부 핵심에서는 적잖은 대통령이 취임사를 배반하는 걸 국민은 목격했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은 북한에 핵 포기를 요구했다. “핵무기 개발 의혹은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와 세계의 평화에 중대한 위협이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임기 중에 “인도 핵은 되고 북한 핵은 왜 안 되나”라며 북핵을 사실상 용인했다. 2007년 남북 정상회담에서는 서해북방한계선(NLL)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발언을 한 것으로 검찰 수사에서 확인됐다. 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한·미 동맹을 소중하게 발전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임기 중 한·미 동맹은 위기에 처했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은 “북한의 어떠한 무력도발도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2002년 북한 도발에 대한 군의 적극적인 대처를 막아 서해교전에서 남한 함정이 침몰하는 사태가 터졌다.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을 섬겨 나라를 편안하게 하겠다” “안보를 튼튼히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친인척과 측근의 비리로 국민이 정권을 걱정하게 만들었다. 연평도 피격 때는 판단을 잘못해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지 못했다.

 2013년 2월 25일 박근혜 대통령도 많은 약속을 내놓았다. 창조경제와 경제민주화로 ‘경제부흥’을 이루겠다고 선언했다. 사회·복지·안전·교육 등을 통해 ‘국민행복’과 ‘문화융성’을 이루겠다고도 했다. 종합적으로 그는 ‘제2 한강의 기적’을 만드는 ‘위대한 도전’에 나서겠다고 했다.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이룬 ‘조국 근대화’를 떠올리게 하는 선언이다.

 박 대통령의 약속은 화려하고 장밋빛이다. 취임식에서 4명의 여가수가 불렀던 ‘아리랑 판타지’ 가사처럼 “새 봄이 오네”다. 그러나 ‘제2 한강의 기적’은 그런 판타지가 아니다. ‘제1 한강의 기적’은 김일성의 적화야욕, 극도로 부족한 자본·기술·자원, 두 차례 오일쇼크 같은 충격 속에서 피와 땀과 눈물로 이룬 것이다.

 ‘제2 한강의 기적’은 험준한 환경에 막혀 있다. 북한은 핵개발과 도발로 박 대통령의 ‘신뢰 프로세스’를 시험할 것이다. 경제성장률은 2% 밑으로 추락할 수도 있다. 역대 정권 최저다. 인사(人事)는 방황하고 국회는 막혀 있고 지지율은 추락 중이다. 어디를 어떻게 뚫어 ‘제2의 기적’을 이룰 것인가.

 많은 국민은 한국 최초 여성 대통령의 취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대통령은 각별한 헌신으로 ‘취임사를 배반하지 않은 대통령’으로 기록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