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볼큰잔치] 윤경민 경희대 대들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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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볼 선수 윤경민(22.경희대)을 볼 때면 문득 1980년대 초반 TV로 방영된 '야망의 계절(원제 Rich man Poor man)'이란 외화 시리즈가 떠오른다.

명문대 법대를 나와 변호사로 잘 나가는 일류 인생을 살아가는 형, 잘 하는 건 주먹 하나로 권투선수와 깡패 등 뒷골목 인생을 전전하던 동생의 얘기가 대충의 줄거리인 드라마였다. 형에 대한 자격지심과 질투, 혹은 응어리로 늘 삐딱했던 동생이지만 중요한 순간이면 되뇌던 말이 있었다."그래도 형이잖아, 미워할 순 없어."

28일 성남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핸드볼 큰잔치 1차대회에서 윤경민이 이끈 대학 최강 경희대가 조선대에 고전 끝에 30-29로 간신히 이기고 첫승을 따냈다.

윤경민은 물론 당시 드라마에서 닉 놀테가 분했던 동생처럼 2류 인생을 살아가진 않는다. 대학 최고의 공격수이자 차세대 한국 핸드볼을 이끌 대들보로 꼽힌다. 그러나 그에겐 언제나 형 윤경신(28.독일 굼머스바흐)이 벽처럼 버티고 있었다.

여섯살 터울 형의 모습을 보고 반해 시작한 게 핸드볼이었다.1m93㎝의 큰 키에서 내리꽂는 폭발적인 슈팅으로 마음껏 코트를 뛰어다녔지만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을 '윤경민'이 아닌 '윤경신의 동생'으로만 기억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역시 형만한 아우 없다"는 말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윤경민은 지금 분명 위기의 시기다. 이날 12골을 터뜨렸지만 11개의 슛 미스와 3개의 턴오버로 전체 경기의 흐름을 자주 끊기게 했다. "오른쪽 무릎 부상으로 제대로 훈련하지 못했다"고 윤경민은 말하지만 "너무 혼자 경기를 풀어가려 한다. 부담감이 커보인다"고 주위에선 지적한다. 무엇이 그의 어깨를 누르는 걸까.

내년 2월 경희대를 졸업하는 윤경민은 형이 있는 독일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이땅에선 한번도 넘지 못한 형의 벽을 머나먼 이국땅에선 과연 극복할 수 있을지, 그에겐 숙명처럼 남은 과제다.

여대부 한체대와 초당대의 경기는 혈전이었다.완전 퇴장 2명, 2분간 퇴장 11회 등 극심한 몸싸움이 이어졌다. 결국 걸출한 공격수 문필희(12골)를 보유한 한체대가 30-28로 승리하며 1차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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