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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연예] 이상은 멋지게 튀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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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 여러분, 즉석 번개입니다. 장소는 인터넷 게시판에…"

"이 세상의 솔로 여러분. 긴 긴 크리스마스가 얼마나 춥고 외로우십니까. 우리 한번 모입시다. 자, 번개입니다. 장소는 방송 후 인터넷 게시판에 공지하겠습니다."

지난해 12월 25일 성탄절. KBS2-FM(89.1㎒) '이상은의 사랑해요 FM'을 진행하던 가수 이상은이 청취자들을 상대로 이런 메시지를 날렸다. 그리고 1시간 후 서울 안국역 부근 카페. 서울.수도권에서 몰려든 1백여명의 팬들로 카페는 만원이었다.

모두 집에서 쓸쓸한 성탄절을 보내던 중이었다. 이상은과 팬들은 밤새 흥겨운 시간을 보냈다. 즉석에서 담다디춤 경연대회도 열렸다. 라디오가 엮어준 인연의 밤이었다.

가수 이상은(33.사진)의 삶은 이처럼 파격의 연속이다. 1988년 MBC '강변가요제'에서 '담다디'를 들고 혜성같이 등장했으나 어느날 일본으로 훌쩍 떠나버렸다.

"나 자신이 소외된다면 진정한 음악이 아니다"는 자조와 함께. '기획 가수'가 판치는 가요계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것이었다. 그녀는 95년 명상적인 분위기의 앨범 '공무도하가'를 발표하면서 완전히 달라진 음악세계를 선보였다.

이렇게 살아온 그녀의 삶은 라디오 진행에도 그대로 묻어난다. 우선 MC들이 경쟁을 기피하는 MBC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정면으로 도전했다는 점이 재미있다. 그러면서도 청취율에 신경쓰지 않는 선곡을 일관되게 실천하고 있다.

'이상은의…'은 영.미 팝 위주지만 샹송.칸초네.라틴 음악도 곁들여진다. 록의 고전부터 재즈.펑크까지 다양하다. 여기에 한번도 접한 적 없는 유럽.남미 음악이 대거 가미된다. 어쩌다 소개되는 국내 가요는 인디 계열이 대부분이다.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에서 선곡은 대개 PD가 전담하지만 이 프로의 경우는 다르다. 이상은이 선곡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과거 음악공부를 위해 구입했던 희귀 CD들이 전파를 타는 경우도 많다. 매니어 군단이 보내주는 자료들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세상에는 수많은 음악이 있는데도 음악시장은 획일화돼 있는 것 같아요. 청취자들에게 음악 듣는 자유를 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다른 방송에선 들을 수 없는 음악들을 의도적으로 많이 소개하죠. 자, 같이 틀을 깨버리자고요!"

방송과 인터넷을 통한 '번개' 역시 자유를 향한 몸짓이다. 청취자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자신의 음악정신을 나눠주는 자리다. 그녀의 방송에 출연하는 게스트들 역시 틀을 벗어나 살아 숨쉰다. 능수능란한 말솜씨 대신 더듬기 일쑤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음악인데요…"라며 때묻은 CD를 꺼내든다.

오는 28일이면 라디오 진행 1백일째. 음악 프로를 진행하면서 자신의 음악에 대한 열정 또한 커졌다고 한다.

다음달에는 그녀의 음악 세계를 총정리한 앨범이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 발매된다. 벌써 11집이다. 물론 그동안 추구해 왔던 음악세계가 바탕이 됐지만, 지난 앨범에 비해서는 대중적 취향을 많이 가미했다고 한다.

"나는 클럽 매니어"라고 말하는 그녀는 홍대 앞에서 산다. 이 공간에서 뿜어내는 젊은이들의 열기가, 때론 광기가 삶의 활력소라고 한다. 이 에너지를 가지고 그녀는 스튜디오에 들어선다. 기분이 '업'돼 번개를 칠 그 순간을 기다리며.

이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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