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클리닉] 빗나가는 중3 딸

엇나가는 자녀 때문에 속앓이를 하십니까? 겉도는 부부관계로 잠 못 이룬 밤은 없으세요?

우리의 가정이 급속히 해체되고 그로 인해 많은 이들이 중병을 앓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망가지는 삶의 울타리를 이대로 둘 수는 없습니다.

중앙일보는 매주 1회 '행복 클리닉'면을 신설, 가정사로 고민하는 독자들의 절절한 상담을 받아 처방해 드리는 새로운 생활기획물을 시작합니다.

전문가나 비슷한 경험을 했던 인생의 선배들이 피부에 와닿는 지상 상담을 통해 각 가정에 행복을 배달해 드립니다.

세 아이를 둔 주부입니다. 요즘 저희 집에 큰 시름 거리가 생겼습니다. 중학교 3학년인 큰 딸 민정이(가명) 때문입니다.

근래 들어 중3 아이들이 유별나게 비뚤어지는 경우가 많아 부모들이 통제를 못하는 현상이 생겼다는 얘기를 듣긴 했지만 내 일이 될줄은 정말 생각 못했습니다.

민정이는 지난해 여름방학 때부터 네 번이나 가출을 했습니다. 학교에서 결석했다는 전화를 받은 적도 여러 번입니다. 요즘엔 가출이 뜸해졌지만 공부엔 흥미를 잃은 것 같습니다. 민정이에겐 지금 꿈도, 희망도 없어 보이니까요.

민정이가 집에 없을 때 컴퓨터를 확인해 봤습니다. 허구한 날 새벽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 있길래 도대체 무엇을 하나 궁금했거든요.

그때 민정이가 청소년 동성애자들의 인터넷 카페에 자주 들렀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인터넷 사이트 안엔 딸 또래의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민정이랑 비슷한 고민을 얘기했습니다.

민정이는 여름방학 때 처음 집을 나갔습니다. 남편이랑 심하게 싸운 뒤였어요. 머리 염색을 하고 싶어 했는데 남편이 안된다고 했거든요. 그러자 민정이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사흘 뒤에 돌아온 딸은 노란 물을 들인 상태였습니다. 그 뒤로 민정이는 남편이랑 충돌이 있을 때마다 집을 나가곤 했습니다.

민정이는 친구들 집에서 잤다고 했습니다. 친구 중엔 자퇴를 한 학교 친구도 있고 인터넷 카페에서 만난 친구들도 있습니다. 민정이가 술이나 담배를 했을지도 모릅니다. 아니, 더 험한 걸 했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더 캐묻다간 부작용이 생길까봐 묻지도 못했습니다.

집에 돌아온 민정이는 남편이랑 거의 매일 싸웠습니다. 남편은 보수적이어서 평소에도 아이들에게 엄하게 대했습니다. 민정이를 보자마자 남편은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민정이는 반항했습니다. 남편에게 욕도 했습니다. 남편은 이성을 잃었습니다. 아무거나 붙잡고 딸을 마구 때렸습니다. 저는 둘 다 무서워 제대로 말리지도 못했습니다.

요즘 부녀지간엔 거의 대화가 없습니다. 서로를 포기한 것 같습니다. 남편은 몇달 사이 흰머리가 부쩍 늘었습니다. 술.담배도 더 자주 합니다.

집안 어른이나 청소년 상담센터 등을 찾아가 상의도 하고 싶었지만 관뒀습니다. 남편도 민정이 문제가 집 바깥에 알려지는 걸 꺼립니다.

민정이가 어렸을 때부터 삐딱했던 건 아닙니다.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책도 많이 읽고 교내 방송반 일도 열심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민정이가 생리를 시작했던 초등 5학년 때부터 변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말대꾸를 하기 시작했거든요. 그때 무슨 조치를 했어야 했는데…. 첫 아이라 경험이 없어서 그랬는지, 무심한 부모는 그때 정말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우울증에 시달리다 저는 요즘 명상센터에서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아이가 이렇게 될 때까지 아무 것도 몰랐다는 생각에 제 자신이 싫어집니다.

살림만 하는 주부가 가정을 위해, 아이를 위해 도대체 무엇을 했나,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합니다. 지금이라도 민정이의 마음을 잡을 수가 있을까요?

경기도 시흥에서 민정이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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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신인섭 기자 <shinis@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