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상] 프리먼VS페렉, 400m '여자 지존'대결

중앙일보

입력

"무림의 양대 지존이 논검(論劍)을 벌이려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몰염치한 소인배들이 아옹다옹 난투극을 벌이며 강호를 어지럽혔다. 그러자 보다 못한 양대 지존이 강호의 질서를 다시 잡으러 발걸음을 떼었으니…."

육상계에도 무협지 같은 상황이 벌어질 전망이다.

지난 1년 동안 트랙을 떠났던 여자 4백m의 양대 지존 캐시 프리먼(27.호주)과 마리 조세 페렉(32.프랑스)이 나란히 내년 시즌 복귀를 선언했다.

페렉은 고향인 카리브해 프랑스령 귀아델루프에서 비공개로 훈련을 시작, 몸만들기에 들어갔다. 언론과의 인터뷰를 모두 거절한 페렉은 공개적으로 복귀를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그 때(시드니 올림픽)나 지금이나 프리먼을 결코 두려워하지 않는다. 2003년 파리 세계육상선수대회에서 시드니 올림픽의 한을 풀겠다"는 굳은 의지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호주 멜버른에서 이 소식을 들은 프리먼은 "벌써부터 그와의 대결 때문에 흥분된다"고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두 사람이 트랙을 떠나 있는 동안 여자 4백m에서는 지난 8월 에드먼턴 세계육상선수권에서 음바케 티암 아미(세네갈)가 우승을 차지하는 등 춘추전국 시대가 계속됐다.

페렉은 지난해 9월 올림픽 육상 명승부로 기대를 모았던 프리먼과의 여자 4백m 결승전 대결을 앞두고 "한 남자가 나를 스토킹했으나 호주 경찰이 도와주지 않았다"며 줄행랑쳤다. 이후 외부와 연락을 끊은 채 잠적했다. 프리먼은 "(페렉은)나와의 대결을 피하려고 거짓말을 했다"고 비난했다.

둘의 감정 싸움은 호주와 프랑스간 설전으로 비화했다. 당시 호주 언론은 페렉의 도피를 '엑소더스(대탈주)'라고 꼬집었고, 프랑스 조스팽 총리는 "호주 당국이 그의 안전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그 이후 페렉은 지난 3월 지인에게 보낸 e-메일을 통해 "안전한 곳에서 편하게 쉬고 조만간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전한 뒤 감감무소식이었다. 도피 이유에 대해서도 해명을 하지 않았다.

국제 육상계는 프리먼과의 대결에 부담을 느낀 페렉이 스스로 결승행을 포기한 것으로 보고 있다.

페렉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4백m와 96년 애틀랜타 올림픽 2백.4백m 부문을 제패한 이 부문 최강자이지만 호주 원주민 출신 프리먼의 도전에 큰 부담을 느껴온 것으로 알려졌다.

애틀랜타 올림픽 4백m 결승에서도 페렉은 48초25를 기록, 48초63의 프리먼보다 간발의 차로 결승선에 먼저 들어왔다.

그러나 96년 브뤼셀 골든리그 대회에서 프리먼(49초48)이 자신(49초72)을 꺾은 뒤로는 슬금슬금 피했다.

페렉은 프리먼과 맞붙을 때마다 대회 상금이 적다거나 컨디션이 안좋다며 불참했다.

라이벌이 빠진 싱거운 결승에서 프리먼은 예상대로 금메달을 땄다.

이후 프리먼도 임신설에 시달리는 등 유명세를 톡톡히 치렀다. 그러다 지난 3월 "지금까지 앞만 보고 달려왔으니 이제 좀 쉬고 싶다"며 은둔 생활에 들어갔다.

지난달 살이 찐 모습으로 나타난 프리먼은 "지난해 올림픽 때보다 8㎏ 정도 체중이 늘었지만 건강하다. 내년 3월 호주 멜버른 그랑프리 육상대회에서 다시 트랙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두 선수의 복귀로 벌써부터 지난 16년간 난공불락이었던 마리타 코흐(당시 동독)의 세계기록(85년.47초60)이 내년에 깨질 것이라는 성급한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이들은 이르면 내년 7월 스위스 로잔이나 프랑스 니스에서 열리는 그랑프리 육상대회에서 그동안 미뤘던 일합(一合)을 겨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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