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이사진 거액배상 판결 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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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전.현직 이사에게 경영판단의 잘못으로 회사에 입힌 손해를 개인적으로 배상하라는 법원의 판결이 나오자 삼성을 비롯한 경제계는 당장의 대응도 그렇지만 향후 유사한 소송이 남발될 가능성에 대해 크게 우려하고 있다.

경제계는 특히 잘못된 기업인수와 청산손실 등 경영전략 선택상의 문제에까지 배상판결이 내려진 데 대해 앞으로 경영진이 대규모 투자 등 과감한 결정을 하는 데 있어 소액주주들이 제동을 걸 수 있다는 대표적인 사례로 남겨질까 걱정하고 있다.

게다가 배상규모가 9명에 9백77억원이나 돼 한 사람당 1백억원 이상씩 물어주면 개인적으로는 파산의 위기에 놓이게 된다는 점도 기업관계자들에겐 큰 부담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재벌그룹의 이사회가 제 역할을 못한 데 대한 채찍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 삼성전자 입장=삼성은 일단 판결을 존중하면서도 이번 판결로 기업경영의 효율성이나 자율성에 부담이 될까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삼성의 한 관계자는 "이천전기의 경우 충분한 자본을 투입하고 경영을 하면 충분히 이익을 낼 수 있는 기업이었으나 외환위기 때문에 청산된 것으로 법적인 잘못은 없다"고 말했다. 또 주식매매에 대해서도 "이사들이 고의로 회사에 손해를 입히기 위한 것이 아닌 정책적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배상판결을 받은 한 고위 관계자는 "경영판단 사항에 대해 수백억원을 물어야 한다면 앞으로 누가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느냐"며 "삼성이 반도체를 시작했을 때 '반도체 때문에 삼성이 망할 것'이라는 말이 많았지만 반도체가 삼성은 물론 대한민국을 먹여살리고 있다는 점에서 경영상 의사결정은 모험심에서 출발할 때 큰 소득이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 재계 입장=전국경제인연합회는 이번 판결을 기업경영의 자율성을 해친 판결이라고 못박았다. 또 앞으로 투자부진 등 심각한 기업경영위축을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경련 김석중 상무는 "이사회가 망할 위험이 높은 이천전기를 잘못 인수해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쳤다고 하는데 이는 기업의 의사결정이 얼마나 불확실한 환경 속에서 이뤄지는가를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金상무는 "합법적이고 정상적인 절차를 밟아 이사회가 소집됐고, 결정이 이뤄졌다면 설령 그 결정이 잘못됐다고 할지라도 이는 이사회의 고유권한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대기업의 한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투명성을 지나치게 추구하다가 기업 본연의 목적인 효율성을 저해하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 전문가 의견=태평양 로펌의 한 변호사는 "중요한 판단기준은 이사들이 의사결정시 합리적인 근거가 있었느냐는 부분이고 만일 합리적인 이유없이 판단했다면 문제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논평했다.

한 기업전문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이사들의 의사결정이 얼마나 큰 책임을 져야 하는 행위인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그러나 불법행위가 아닌 회사구조조정 차원의 결정으로 보이는 부분에도 배상책임을 물은 것은 구조조정에 제동을 거는 나쁜 효과도 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대기업 임원들이 주요 의사결정을 할 때 매우 신중해져 예컨대 사후에 대비해 근거서류를 남기려 할 것이며, 소송에 대비해 보험을 드는 기업.임원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양선희 기자 sunn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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