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공적자금이 로비자금인가

중앙일보

입력

부정부패에서 자유로운 고위 공직자는 과연 얼마나 될까. 김용채(金鎔采) 자민련 부총재가 수뢰혐의로 검찰의 소환조사를 받게 됐다는 소식을 접하며 이런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그에 대한 혐의는 김종필(金鍾泌) 국무총리 비서실장으로 재직하던 1999년 한 기업에서 자금지원 청탁과 관련해 2억원을 받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국민의 허탈감을 다소나마 덜기 위해서라도 아니기를 바라지만, 해당 회사조차 모른다더니 즉시 돌려줬다고 말바꾸는 것을 보면서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부정부패의 대명사가 된 각종 '게이트'와 '리스트'에 시달린 국민이 더 분노하고 배신감을 느끼는 데는 그의 위치와 돈의 성격도 작용한다. 혐의 사실이 발생한 시점은 부패방지법 제정을 둘러싸고 논의가 무성하던 해였고 그는 국정을 총괄 지휘하는 金총리의 핵심참모였다.

또 얼마 전 건설교통부 장관에 임명될 때는 경륜을 갖춘 유능한 인사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 그가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국민의 혈세로 지원되는 공적자금을 빼돌리는 데 일조한 혐의를 받으니 어이가 없다.

왜 공적자금을 둘러싸고 그리도 시끄러웠고, 이런 저런 나라 빚을 합하면 4백조원이 넘는다는 등 온 국민이 빚더미 위에 앉은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 어슴프레 짐작된다. 여권의 일원으로서 자민련 인사만 부패와 무관했기를 기대한 바는 아니지만 고위 공직자의 도덕적 해이를 다시한번 확인하는 국민으로서는 서글픔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어디 '김용채 케이스'가 이뿐이겠는가.정부는 골수에 스민 공직부패와 이로 인한 경제적.사회적 위기를 차단하기 위해 단호한 척결에 나서야 한다. 물론 여야.지위 고하를 가리지 않는 엄정한 부패청산 작업이어야 한다.

자민련도 金부총재가 JP의 대선기획위원장임을 들어 정치적 압박이니 어쩌니 하며 사태를 호도해서는 안된다. 검찰은 표적수사니 자민련에 대한 정치적 카드니 하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한줌 의혹없이 수사해야 할 것이다. 부정부패의 대물림을 막아야 모두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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