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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경고는 정치적 퍼포먼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11호 33면

지난 21일 홍콩 봉황TV의 시사토론 프로그램 ‘일호일석담(一虎一席談)’의 패널로 참석했다. 주제는 ‘중국이 대북 제재를 해야 하느냐’였다. 토요일 저녁에 방송된 뒤 다음날 재방송을 할 만큼 이 프로그램은 인기가 높다. 그 이유는 대륙 매체들이 못 다루는 민감한 정치이슈를 많이 다루는 데다 끝장토론을 유도하고, 찬반 피켓으로 매 발언마다 청중 반응을 실시간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예비역 장성과 대학교수 등 평소에 점잖던 이들이 토론을 하다 얼굴을 붉히거나 심지어 삿대질을 할 때도 있으니 시청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써니 리의 중국 엿보기

한국인들이 이번 주 토론현장을 봤으면 환성을 질렀을지도 모른다. 대다수의 중국 학자와 청중들이 ‘북한 핵은 중국에도 위협이다’ ‘중국이 대북정책을 전환할 때’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감정이 격앙된 몇몇 청중은 발언권도 얻지 않고 대북 비판 발언을 쏟아놓는 바람에 사회자가 여러 차례 질서를 당부했다. 오랜만에 보는 난상토론이었다.

중국 곳곳에서 북핵 반대 시위가 일어났다는 사실이 국내외 언론에 보도됐다. 심지어 주선양 북한총영사관 앞에서 시위를 하는 사진이 중국 인터넷에 떠돌고 있다. 유례없던 일이다. 한국 언론도 이런 분위기에 가세하고 있다. 유엔 안보리 제재조치와는 별도로 중국이 독자적 조치를 할 수 있느니, 중국이 대북 통관 절차를 강화했느니 등 다양한 소식이 잇따랐다. 심지어 ‘중국 정부가 대북 원조 규모를 얼마나 하는지 알려달라’며 정보 공개 요청을 한 베이징의 팔순 노인을 전화로 인터뷰해 보도했다. 어느 민간단체는 ‘북한이 추가 핵실험을 하면 보복 타격해야 한다’는 규탄 성명까지 냈다고 한다.

그렇다면 중국 정부는 이번에 정말 대북정책을 바꿀 것인가.

TV토론 말미에 필자는 옆에 있던 ‘중앙당교’의 저명한 북한 전문가를 향해 농담조로 “이번에 공산당 지도부가 정말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라고 운을 떼었다. 그러자 재치 있는 사회자가 내 어깨를 짚으며 “정말로 공산당의 생각을 대변하는 사람은 이런 자리에 나올 수 없지”라고 뼈 있는 농담으로 응수했다. 주변에서 폭소가 터졌다. 한마디로 ‘우린 지금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는 무언의 공감대를 드러낸 것이다. 아마 실제 방송에서는 이 부분이 잘려 나갈지도 모른다. 중국 외교부의 대북 규탄 발언도, 대북 통관 강화 조치도 모두 평양에 경고 시그널을 보내는 정치 퍼포먼스다. 한국의 유명 정치인이 “북핵에 맞서서 우리도 핵무기를 독자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한·미 안보관계를 아는 전문가들이 볼 때 한국의 핵무장론이 현실성을 갖지 못한 것처럼, 중국 민간 사회에서 대두한 대북 강경 시그널을 해석할 때도 냉정함이 필요하다. 중국 정부가 자신의 아태지역 전략에 어긋나게 과연 대북정책을 바꿀 것인지 따져봐야 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한 관방학자는 사석에서 “북한을 한 대 때려주고 싶은데 그렇지 못하니 입으로 푸는 것”이라고 일련의 현상을 압축했다. 그는 한마디 더 얹었다. “북한을 다루는 전술은 바뀔 수 있지만 전략은 바뀌지 않는다.”

그럼에도 중국 민간 차원의 대북 혐오감은 장기적인 북·중 관계의 추이를 판단하기 위해 꾸준히 관찰해야 할 부분이다. 중국 지도부의 외교정책이 성난 네티즌들의 의견에 영향을 받고 있다는 비공개 보고서가 최근 나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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