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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야 ~ 불이 춤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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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충남 논산, 2013. 2. 셔터스피드 1초, ISO 800, 조리개 6.3

충남 논산시 연산면 송정리 범골 양지서당에서 명심보감·사자소학 등을 익히고 있는 유생들이 정월대보름(24일)을 앞두고 쥐불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쥐불놀이는 정월대보름 때 불을 놓아 논두렁·밭두렁을 태우는 풍습입니다. 쥐불놀이는 한 해 농사를 준비하는 우리 조상들의 슬기가 담겨 있습니다. 불을 놓아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쥐를 잡고, 논밭 주위 마른 풀에 붙어 있는 해충 알을 태워 없애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타고 남은 재는 거름까지 되니 잭 니컬슨 주연의 영화제목처럼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입니다. 이외에도 조상들은 이날 놓은 불이 잡귀를 쫓고, 액을 달아나게 해 1년을 아무 탈 없이 잘 지낼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쥐불놀이 불씨로 옛날에는 쑥방망이를 사용했습니다. 쑥방망이는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입니다. 줄기가 60~160cm쯤 되고 거미줄 같은 털이 있습니다. 여기에 불을 붙여 들판에 나갑니다. 풀이 있는 곳마다 쫓아다니며 불을 놓습니다. 쥐불놀이에 깡통을 사용한 것은 대략 한국전쟁쯤입니다. 불쏘시개를 넣은 깡통을 빙빙 돌리는 것은 불을 키우기 위해서입니다. 깡통은 바람이 잘 들게 구멍을 숭숭 뚫습니다. 마땅한 놀이가 없던 시절 쥐불놀이는 아이들에겐 즐거운 놀이였습니다. 1년에 한 번 허용된 불장난이었으니까요.

1970년대만 해도 농촌진흥청은 병충해 방제를 위해 쥐불 놓기를 권장했습니다. 하지만 산림청은 쥐불로 인해 산불이 난다며 쥐불놀이 금지를 주장했습니다. 이후 쥐불로 인한 대형 화재가 전국 곳곳에서 발생하자 1970년대 말부터 정부는 단속을 시작합니다. 이에 따라 쥐불놀이는 많이 위축돼 갔습니다. 물론 경제가 성장하면서 수고로움이 많이 들어가는 쥐불놀이가 뒷전으로 밀린 것도 이유 중 하나일 겁니다. 몇 해 더 지나면 쥐불놀이는 옛날 사진으로만 보게 될지도 모릅니다.

글=조문규 기자
사진=김성태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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