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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타가와상 ‘75세 문학소녀’ 구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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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5살 때부터 평생 글을 써왔다는 구로다 나쓰코. 그는 “새로운 것을 쓰고 싶다.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을 표현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지통신]

75세 문학소녀- .

 지난달 일본 최고 권위의 신인문학상인 아쿠타가와(芥川)상을 수상한 구로다 나쓰코(黑田夏子)를 일컫는 말이다.

 그는 역대 최고령 수상자다. 10대 후반에서 20대의 신예 작가가 타는 신인상을 75세에 수상했으니 모두가 깜짝 놀랐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게 있다. 그의 ‘글쟁이’ 경력은 무려 70년에 달한다는 사실. ‘상품’으로 내놓지 않았을 뿐이지 ‘작품’은 그의 인생의 전부였던 게다. 70대에 신인상에 응모한 것도 어려서부터 계획했던 로드맵에 따른 것. “그쯤(70대) 돼야 상품으로 내세울 수 있다”는 게 그의 철학이었다.

 명문 사학 와세다(早稻田)대 출신이지만 정규직 회사원을 마다하고 아르바이트만 골라 했다. 결혼은 생각도 안 했다. 물론 ‘파트너’는 몇 명 있었지만 조건이 있었다고 한다.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것. 이유는 단 하나. 글쓰기에 모든 에너지를 쏟기 위해서였다.

 그의 수상작 『ab산고』는 일단 특이하다. 일본 문학에선 드물게 가로쓰기를 채택했고 인칭대명사가 없다. 가타카나(외래어 표기)도, 따옴표도 없다. 워낙 이질적이라 “몇 쪽 읽다 포기했다”는 독자도 상당수다. 지난 15일 도쿄의 프레스센터 빌딩에서 만난 그는 “그래도 한번 리듬을 타면 술술 읽힌다는 독자도 많다”며 소녀 같은 미소를 보였다.

나이 많아 화제되는 것 원치 않아

 - 수상 직후 어떤 기분이었나.

 “발표 전 주위에서 ‘수상하는 것 아니냐’고 자꾸 묻더라. 만약 상을 받지 못하면 사람들에게 어떻게 사과해야 하나 걱정뿐이었다. 수상이 결정됐다는 소식을 들은 순간 기쁘다기보다는 ‘아, 사과하지 않아도 되겠구나’며 안심했다.”

 - 75세의 최고령 수상자라 일본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화제인데.

 “그것만으로 화제가 되는 건 원치 않는다. 하지만 그런 화제를 계기로 많은 분이 작품을 읽고, 그중에 내 작품과 파장(波長·코드)이 맞는 독자를 만날 수 있다면 하나의 수단으로서 최고령 수상자라는 화제가 거론되는 것도 괜찮은 게 아닌가 싶다.”

 - 60세가 넘어 소설가나 시인으로 등단해도 문제가 없나.

 “음, 솔직히 말하면 은퇴 후에 뒤늦게 집필을 시작해 작가로 등단하는 건 늦은 게 아닌가 싶다. 75세의 최고령 수상자라고는 하지만 나는 다섯 살 때부터 계속 글을 써왔다. 내가 나이 들어 아쿠타가와상을 받은 것이 그들에게 격려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내 입장에선 (나이 드신 분들에게) 집필을 시작하라고 권하고 싶지는 않다.”

 - 5세에 무슨 글을 썼단 말인가.

 “3~4세 때부터 그림책을 보면서 그 스토리들을 열심히 다시 연상하며 글을 썼다. 쓰면서 ‘더 긴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줄곧 해 왔다. 어릴 때부터 ‘난 글 쓰는 사람’이란 생각밖에 하지 않았다.”

 - 글을 쓰는 게 귀찮아진 적은 없나.

 “단 한 번도 없었다. ‘이것밖에 없다’란 생각이었다. 다만 오랜 세월 글을 상품화하지 않은 것뿐이다. 역으로 말하면 내 마음대로 원하는 작품을 끊임없이 쓰는 데 집착했다.”

 - 그래도 먹고살아야 글도 쓰지 않나. 어떻게 생활을 지탱했나.

 “(와세다대) 국문과를 나와 중·고교에서 교사를 했다. 내게 최우선은 글을 쓰는 것이었기 때문에 시간 확보를 위해선 일반 회사에 들어가는 것보다 교사가 되는 게 낫다고 봤다. 하지만 교사를 해보니 사정이 그렇지만도 않아 2년 만에 그만뒀다. 이후는 아르바이트 인생이었다. 정규 사원이 되면 조직과 시간에 묶여 마음대로 그만두지도 못하기 때문에 일부러 아르바이트를 택했다. 30대 초반에는 수건에 고객 이름을 인쇄하고 포개 비닐에 넣는 수작업을 했다. 광고음악 작곡가 사무실에서 사무 아르바이트를 3년가량 한 적도 있다. 30대 후반부터는 출판 교정작업 아르바이트에 집중했다. 대략 30여 년간 여기저기 출판사를 돌아다니며 시급(時給)을 받으며 교정작업을 했다. 끼니만 때우는 생활이었지만 글만 쓸 수 있다면 그래도 좋았다.”

서고에서 포즈를 취한 구로다 나쓰코. [중앙포토]

 - 인생의 진로를 결정하게 된 전환점이 있었나.

 “그런 것 없었다. 교사가 되면서 집을 나와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려면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글을 써왔을 뿐이다.”

  - 이성에 대한 관심도 없었나.

 “그건 아니다(웃음). 수십 년간 몇 명의 파트너는 있었다. 정식으로 혼인신고를 한 적도 없고 아이를 가질 생각도 없었다. 그쪽에 에너지를 빼앗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파트너만 만났다.”

 - 언제까지 글을 쓸 생각인가.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쓸 것인가.

 “그런 거창한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살아 있는 동안 앞으로 작품 하나 정도는 쓰고 싶다. 그렇다고 집착하는 건 아니다.”

“순서·스토리 무시하는 게 내 문체”

 - 가로쓰기에 가타카나, 따옴표, 고유명사, 성별 표시도 없다. 이런 이질적 실험을 한 이유는.

 “이 작품에는 이렇게 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을 뿐이다. 젊은 시절에는 동인지에 발표도 했지만 30대 중·후반부터 40년간은 단 한 건도 외부에 발표하지 않았다. 외부에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지 내 글체가 원래 그랬다. 예컨대 따옴표를 안 쓴 것은 10대부터다. 워낙 바깥 세상에 드러나지 않아서 그랬던 것이다.”

 - 그럼 다음 작품도 같은 문체로 쓸 생각인가.

 “그렇다. 내 문체로 일관할 것이다.”

 - 이 작품은 1970~80년대 a씨, b씨란 호칭을 사용하는 일본의 어느 핵가족이 새로 가정부를 맞이한 뒤 소중한 일상을 잃어가는 모습을 그려낸 자전적 소설이다. 독자에게 전하려 했던 메시지는.

 “메시지는 전혀 없다. 무언가를 전하려면 논문을 쓰면 된다. 작품은 무언가를 전달하기 위한 게 아니라 만드는 사람으로부터 독립된 하나의 존재물을 ‘쇼쿠닌(職人·장인)’처럼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 본다. 무언가를 전달하기 위해 보다 효율적인 전달 수단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림이나 음악도 마찬가지다. 작품을 만든다는 것은 무언가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독립된 작품에 내포돼 있는 것을 (독자가) 알아서 가져가면 된다.”

 - 그래도 단편소설에는 메시지나 스토리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 작품에는 두 가지 모두 필요 없다. 일반적으로 독자들은 스토리와 인물의 매력을 소설에서 읽고 싶어 할 것이다. 그런 기대에 부합하지 못해 송구스럽지만 이 작품은 스토리로 성립된 작품은 아니다. 또 스토리로 읽어주길 바라는 작품도 아니다.”

 - 이 작품을 쓰는 데 시간은 얼마나 걸렸나.

 “난 애초에 글을 순서대로 쓰지 않는다. 부분적으로 써서 조합하는 스타일이다. 원래 이 작품은 7~8년 전에 400자 원고지 280장 정도로 썼던 것인데 이번 아쿠타가와상 신인상 응모요건인 100장으로 줄인 것이다.”

 - 『ab산고』가 수상작으로 선정됐을 때 ‘70년의 세월 동안 계속 글을 써오길 잘했다’는 생각은 안 들던가.

 “이런 일이 없어도 난 글을 썼을 테니 별로 그런 느낌은 없었다. 오랜 세월 글을 써오길 잘했다기보다는 오랜 세월 글을 써올 수밖에 없었다.”

세상이 변해도 문학은 남는다

 - 인터넷 시대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문학을 위협한다. 이 시대에 문학이 설 땅, 숨 쉴 땅은 어디에 있을까.

 “난 혼자 작업을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가급적 세상의 풍조에는 휘둘리지 않으려 한다. 달리 말하면 일종의 포기다. 인생에서 할 수 있는 건 그리 많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 역할은 (세상의 풍조에 휘둘리는 게) 아니라며 스스로 차단한다. 난 ‘글 언어’에 집착한다. 세상이 아무리 변한다 해도 평생 글 언어로 작품을 만들겠다는 생각에는 흔들림이 없다. 1000년 전 작품을 지금 읽어도 우리에게 기쁨을 주지 않느냐. 세상이 변한다 해도 문학이란 장르는 남을 것이다. 다만 (문학이) 어떤 형태로 남아야 한다는 생각은 굳이 하지 않는다.”

 - 글 쓰는 작업은 컴퓨터로 하나.

 “70년째 종이에 쓴다. 젊을 때는 400자 원고지를 썼는데 1000자 정도는 한 장에 보지 않으면 흐름을 놓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200자, 400자 원고지를 포기했다. 대신 30행에 34자씩 들어가는 1020자 원고지를 고수하게 됐다. 작품을 쓸 때 관련 자료를 열심히 찾는 작가도 있다지만 난 그런 걸 해본 적이 없다. 또 작가 스스로 글쓰기 전에 체험을 해보는 사람도 있다는데 난 결코 나서서 하지 않는다. 순전히 내 안에 있는 감성으로 느낄 뿐이다.”

 - 아쿠타가와상 수상자로서 노벨 문학상을 평가해달라. 노벨상의 심사 기준은 옳다고 보는가.

 “노벨 문학상은 정치적인 것 아니냐. (수상자의) 국가 순서를 대략 고려한다거나 국가의 힘이 좌우한다고 본다. 작품이 좋다고 해서 선택되는 건 전혀 아니라고 본다.”

 - 한국 문학이나 책을 접해 본 적이 있는지.

 “아쉽게도 거의 없다. 앞으로 읽어야 하는데…. 동시대 작가의 작품을 읽은 것도 별로 없다. 쓰는 데 집중하다 보니 읽는 데 소홀했는지도 모르겠다.”

김현기 기자

◆아쿠타가와상=『라쇼몽(羅生門)』을 쓴 일본의 근대 소설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를 기려 1935년 제정된 문학상이다. 수상자에게는 100만 엔(약 1200만원)의 상금을 준다. 1회 때부터 당시 귀중품이던 시계를 부상으로 주어온 전통을 지금도 잇고 있다. 매년 1월과 7월 두 차례 수상작을 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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