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선 빚는 하이닉스 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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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미국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와의 협상을 이끄는 하이닉스 반도체 경영진은 신경이 보통 날카로워진 게 아니다.

사운을 건 협상 테이블의 밀고 당기기 공방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협상추이를 놓고 이런 저런 추측과 예단이 난무해 이 불을 끄는 데 더 진땀을 흘리는 모습이다.

'정부 고위 당국자''채권단 소식통'식의 익명을 빌려 협상이 이렇게 저렇게 진행되고 있다는 추측보도가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져 나와 하이닉스 회생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들이 혼란스럽다.

게다가 각자 처한 입장마다 기대하는 바가 달라 같은 협상과정이 다르게 착색되기도 한다. 마이크론과의 협상을 통해 막대한 출자지분을 털어버리고 싶은 채권단 쪽과 어떻게든 현금이 들어오는 것을 바라는 하이닉스 쪽의 이해가 엇갈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아전인수식 해석과 전망을 낳는다.

외부에서 영입한 하이닉스 구조조정특별위원회 최고책임자마저 지난달 취임 이후 '합병 가능성이 있다''협상이 잘 안되면 삼성전자와 협의할 수도 있다'고 공언해 하이닉스 쪽을 당혹스럽게 하기도 했다.

하이닉스가 21일 주문형 반도체(ASIC)설계회사협회에 공개 서한까지 보내 "정정기사와 사과 광고를 내라"고 요구한 것도 요즘 불편한 심경의 단면이다. 이 협회는 "별도 법인을 세워 하이닉스의 일부 생산라인 인수를 추진하겠다"고 지난 주 발표한 바 있다. 하이닉스는 "일방적인 생각일 뿐이며 마이크론과의 협상에도 도움이 안된다"고 발끈한 것. 사실 은밀히 해도 될까말까한 나라간의 대형 빅딜을 '이제부터 협상을 시작하겠소'하고 지난 3일 만방에 고할 때부터 이런 혼선은 불보듯 뻔했다. 물론 하이닉스가 원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하이닉스 문제의 조속한 해결에 조바심이 난 정부.채권단 쪽에서 마이크론과의 협상 소문이 흘러나왔다. 더 이상 덮어둘 수 없게 된 것이다.

마이크론과 일본 도시바 제휴협상의 모양새는 이와 판이하다.마이크론은 지난 18일 예상(독일 인피니온이 인수)을 뒤엎고 도시바의 미국 D램 공장을 인수한다고 전격 발표했다."인수.합병 협상은 쥐도 새도 모르게 일을 진행시킨 결과를 공개하는 깜짝쇼여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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