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장 개설 중형 부당”…단독판사 판결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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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장을 연 행위가 사회적 부작용을 초래하는 면이 있지만 이미 거악(巨惡)을 범하고 있는 국가의 손으로 피고인을 중죄로 단죄하는 것은 정의롭지 못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단독 이형주 판사는 최근 중국에서 불법 스포츠 도박 사이트를 개설해 30억원을 챙긴 혐의(도박개장 등)로 기소된 최모(34)씨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하며 이렇게 판결 취지를 밝혔다. 이 판사는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실형을 선고하는 것은 지나치다”며 최씨에게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 추징금 7억여원, 400시간의 사회봉사를 선고했다.

 이 판사는 판결문 대부분을 국가의 사행사업(복권·경마·경륜·카지노 등) 정책을 비판하는 데 할애했다. 이 판사는 “국가가 앞장서서 여러 복권 사업과 경마·경륜·내국인 카지노 등 실질적인 도박 개장 행위를 하면서 개인의 도박 개장 행위를 처벌하는 것은 그 자체로 형평성에 어긋날 소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서울중앙지검의 한 검사는 “사설 도박장을 차려놓고 수십억원을 챙겼는데 국가가 카지노 등을 운영한다는 이유로 무겁게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은 편향된 생각”이라고 말했다.

 판사 혼자 재판하는 형사단독 재판부에선 종종 ‘튀는’ 판결이 나온다. 이정렬 창원지법 부장판사는 2005년 서울남부지법 형사 단독 판사 때 “운동 경기는 경기자의 기량이 승패에 큰 영향을 미치므로 내기 골프는 도박이 아니다”는 취지로 억대 내기 골프를 벌인 이모(61)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해 논란을 일으켰다.

MB정부 초기에도 전교조 교사들의 시국선언 사건이나 강기갑 의원의 국회 공중부양 사건에 대해 형사 단독 재판부에서 무죄라고 판결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들 판결은 모두 대법원에서 깨져 유죄가 선고됐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지난해 12월 법관 임명식에서 “혼자만의 독특한 가치관이나 편향된 시각을 (법관의) 양심으로 포장해서는 안 된다”며 “얕은 정의감이나 설익은 신조를 양심과 혼동하다가는 오히려 재판의 독립이 저해된다”고 지적했다.

대법관을 지낸 김황식 국무총리도 지난달 서울중앙지법을 방문해 “법원 판결에 대해 주문을 미리 짜놓고 거기에 논리를 끼워맞추는 ‘기교 사법’을 하고 있지 않은지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법원 출신의 한 변호사는 “경륜 있는 판사들이 단독 재판부를 맡도록 하는 등 법조일원화를 더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기환 기자

◆형사단독 재판부=형사 재판부는 법관 3명(부장판사 1명과 평판사 2명)이 판결하는 합의부와 1명이 판결하는 단독 재판부로 나뉜다. 주로 경력 5~15년차 법관이 단독 재판부를 맡는다. 사형·무기징역 또는 단기 1년 이상의 징역·금고에 해당하는 사건 등을 제외한 비교적 형량이 낮은 사건을 심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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