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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조국은 젊은이들 것″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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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강용흘(65)씨는 1938년 미국서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최초의 영문소설「초당」(GRASS ROOF)을 발표, 「고요한 아침의 나라」를 세계에 소개한 작가이다. 그는 함남 태생으로 함흥 영생중학교 졸업, 도미하여 한때 귀국한 일도 있으나 일생을 미주에 은거하면서 집필생활을 하고 있다. 다음은 지난34차 국제「펜·클럽」대회에 참석했던 극작가 차범석씨가 「롱·아일랜드」의 「헌팅턴」으로 그를 찾아간 글이다.
강씨의 주소는 Young hill Kang, Box 383, H.untington-N.Y., U.S.A.【편집자주】
주택지라기 보다는 숲속이었다. 겨우 자동차가 들어설만한 샛길사이로 차가 들어서자 이름모를 새들의 우짖는 소리가 한결 한적한 기분을 돋우었다. 건평 20평 남짓한 낡은 2층건물. 비바람에 씻긴 나무판자는 칠의 윤기를 잃은지도 이미 오래인양 어두운 회색으로 늙어있었다. 「뉴요크」에서 약 2백「마일」 떨어진 이 해변가에서 유유자적하는 강용흘씨를 찾아 오기까지엔 강욱·김한용 두분의 힘이 컸었다. 두분과「콜럼비아」대학예서 각각 철학과 정치학 박사 학위 과정을 밟고 있는 청년으로 손수 자기차를 몰고 온 것이다.
강용흘씨와는 전부터 친분이 있는 강욱씨가 먼저 현관으로 플어서자 우리가 찾아간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지 뒤뜰에서 키가 작달막한 노인이 한분 나오셨다. 그분이 바로 1938년 Grass Roomf(초당) 라는 영문소설로 필명을 떨친 강용흘씨 일줄이야…. 회색 작업복 바지에 무명 반소매「샤쓰」를 걸친 차림새며 은빚 머리카락은 제멋대로 헝큘어지고 햇볕에 그을린 열굴이며 팔푹은 평범한 촌부로 밖에 안보였다.
『고국에서 여러분들이 오셨다는 소식은 들었읍네다만… 이렇게 먼 곳까지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말끝이 약간 혀꼬부라진 듯 하나 또릿하고 정확한 한국말 이었다. 1946년 가을 연희대학에 나와서 특강을 했던때의 그 유창한 학술과 풍부한 식견과 그리고 패기에 찼던 옛모습과는 너무나 변해 있었다. 그러나 20년전 학생시절의 필자를 쉽게 알아보는 기억력은 놀라왔다.
이윽고 강욱씨가 부인을 데리고 나와서 인사 소개를 했다. 미국사람이지만 소박하고 자상한 부인이었다. 노부부는 우리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70「마일」밖 낚시터까지 가서 잉어를 구해 왔다는 것이다. 우리는 저녁식사 준비가 될때까지 바닷가에서 시간을 보냈다.
『선생님은 으즘 어떻게 소일하고 계십니까?』 필자가 이윽고 묻자
『나야 이제 늙은 사람인데 할일이란게 있나요? 그저 이것저것 잡문이라도 써서 잡지사에 가져다 주면 섭섭치 않게 원고료를 주니까요.』
말하자면 그것이 유일한 생활비 염출방법 이라는 뜻으로 들렸다. 그러자 그분의 얼굴엔 분노도 경멸도, 그렇다고 후회도 아닌 넋두리가 흘러나왔다.
『이승만 정권하에서 내가 받은 상처를 생각하면 기가 막힙니다. 그 사람은 이미 고인이 되었으니까 굳이 욕을 하고 싶지도 않지만 그 사람은 나를 퍽 못살게 굴었어요. 그당시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서는 이승만씨 보다는 서재필씨가 더 적격자라는 얘.기를 한 죄밖에 없어요. 나와 그 사람과는 나이의 차이는 있지만 친분이 두터웠지요. 지금 내 서재에 가보면 알테지만 그 사람이 내게 보낸 편지가 있어요. 언제든지 공개할 수 있지요. 그래 나는 내소견을 솔직이 피력했는데도 그게 비위에 걸린다고 10년동안 내뒤를 밟아가면서 못살게 굴었으니….』『못살계 굴었다니 어떻게 말인가요?』
『글세, 내가 어느 대학에 초청을 받아 특강을 나가려하면 당시의 외교관인 ×씨를 시켜 우리 유학생 보고 강연을 듣지못하게까지 했으니까요. 게다가 고 김말봉 여사의 소설 「태양의 권속」을 영어로 번역해서 출판하려는데 그것도 못하게 했지요.』
『선생님께서 그후에 쓰신 작품은 없읍니까?』
『희곡을 썼어요. 「공민왕」을 극화해서「버지니아」주립대학에서 상연했지요.』
『그럼 앞으로 무슨 저작을 하실계획이라도 있으십니까?』
『예, 한용운씨의「님의침묵」을 완역하고 있습니다. 내 아내의 협조를 얻어서 앞으론 그분의 전작을 번역할까해요.』
『고국에 나오실 계획이라도….』
『「노」…나 같은 사람은 이제 나이도 많은데… 지금은 젊은이의 시대니까요. 나는 이렇게 좋아하는 한시를 읽고 글이나 쓰다가 죽는거죠….』
올해 65세의 노작가의 눈엔 이슬 같은게 번쩍거렸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는 이름으로 「유럽」대륙에까지 알려진 그의 「초당」은 어쩌면 현재 그가 살고 있는 집과 뜰과 그리고 이 아름다운 전원을 두고 썼는지도 모를 일이다. 고국에서 보다는 외국에서 더 알려지고 더 존경을 받는 문학가가 이렇게 쓸쓸한 여생을 보내고 있는 모습을 눈앞에 보았을 때 뭔가 가슴을 답답하게 짓누른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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