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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범 재판 단죄 넘어 치유 과정 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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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소년 재판 전담법관인 천종호(48·사진) 창원지법 부장판사의 재판장 풍경은 독특하다. 천 판사가 이른바 ‘1진’ 소년범들을 따끔하게 호통치는 것은 예사다. 좀처럼 잘못했다고 하지 않는 소년범들이 부모에게 무릎 꿇고 비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다. 이럴 때면 법정 안은 울음바다가 된다. 천 부장판사는 “소년 재판은 병든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말했다. (중앙일보 2월 일자 14면 참조)

 천 부장판사가 18일 그동안 재판을 맡은 소년범들의 사연을 담은 책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를 펴냈다. 가정과 학교를 이탈해 범죄에 빠진 소년들의 사연이 담겼다. 인세는 전액 소년범 복지 시설에 기부할 예정이다.

 - 책을 낸 배경은.

 “재판할 때 늘 ‘한 번 더 일어설 기회를 준다’는 원칙을 갖고 했다. 그동안 만난 소년범은 6000여 명이다. 이들 대부분은 ‘나는 한 번도 보살핌 받지 못했다’는 생각을 갖고 있더라. 이러다보니 사회에 대해 이유없는 적개심을 갖게 되고, 범죄로 이어진다. 이들에겐 기회가 다시 주어져야 한다. 그렇기 위해선 그 사연들을 우리 사회, 우리 어른들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 기회를 어떻게 주나.

 “제대로 된 가정이 있는 소년은 따끔하게 혼내고 돌려보낸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엔 고민에 빠진다. 소년원은 처벌의 수단은 될 수 있지만, 교화시켜 내보내긴 어렵기 때문이다. 부모가 역할을 제대로 하도록 다그치거나, 부모를 대신할 수 있는 이라도 법정에 세워 책임지도록 한다. 대안가정 역할을 하는 청소년회복센터로 보내기도 한다.”

 - 소년범을 강력히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도 있는데.

 “소년범에 대한 처분은 처벌보다 교화에 무게를 둔다. 물론 무조건적인 교화는 아니다. 내 별명이 ‘10호 처분’(소년원에 2년 수용토록 하는 것)을 자주 내린다고 해서 ‘천10호’다. 다만 중간에 치유 과정이 필요하다. 피해자에게 용서를 비는 과정을 거쳐 스스로 잘못을 깨달아야 한다. 부모와 무너진 관계도 회복시켜야 한다.”

 - 사회에선 소년범을 훈계하고 풀어주는 경우가 많다.

 “돌아갈 곳도 변변찮은 소년범을 훈계하고 풀어주는 것은 선처가 아니라 방임이다. 풀어줬을 때 소년들이 돌아갈 곳이 있는지까지 챙기는 게 진짜 선처다.”

 - 소년범 재판관은 어때야 하나.

 “부끄러운 얘기지만 과거엔 소년범 30여 명을 줄세워놓고 ‘1, 3, 27번은 소년원 3개월. 나머진 집으로’하는 식의 무성의한 판결을 내리는 선배 법관도 있었다. 죄를 묻고 처분 내리는 역할에서 벗어나 이들의 상처를 ‘힐링’하는 법관이 돼야 한다.”

김기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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