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독설 덮기? 차베스 깜짝 귀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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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베스

암 투병으로 인해 취임식에도 참석하지 못한 채 두 달여 동안 쿠바에 머물렀던 우고 차베스(58)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18일 귀국했다.

 로이터통신 등은 이날 차베스가 트위터에 “우리는 조국에 돌아왔다. 하느님과 사랑하는 국민께 감사한다. 우리는 이곳에서 치료를 계속하겠다”는 글을 올렸다고 보도했다. 그가 트위터에 글을 남긴 것은 지난해 11월 1일 이후 처음이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차베스 대통령이 장관들과 함께 귀국했다”며 “오전 2시30분에 도착했으며, 현재 카라카스에 있는 군 병원에 머물고 있다”고 밝혔다. 또 차베스는 현재 기도에 삽관한 튜브를 통해 호흡하는 상황이라 말을 하기는 힘들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차베스의 구체적인 상태에 대해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았으며, 사진이나 영상도 공개되지 않았다.

 차베스가 베네수엘라로 돌아온 것은 꼭 70일 만이다. 2011년 암 진단을 받은 그는 여러 차례의 수술과 항암치료 뒤 암 완치를 선언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추가로 악성 종양이 발견돼 쿠바에서 네 번째 수술을 받았고, 한때 의식불명에 빠졌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1999년 대통령직에 오른 뒤 14년 동안 베네수엘라를 통치해 온 그는 지난해 10월 대선에 출마해 4선에 성공했다.

 차베스의 깜짝 복귀는 자신의 건재를 과시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베네수엘라 내각은 쿠바에 가서 직접 차베스를 만나 구체적인 지시를 받고 있다고 강조해 왔지만 야권을 비롯한 상당수 국민은 차베스가 이미 국정 운영 및 판단능력을 상실했다고 믿어 왔다. 특히 그의 부재가 길어지며 차베스에게 몇 시간 동안의 비행을 감당할 만큼의 기력도 남아 있지 않다는 추측이 설득력을 얻었다. 정부가 지난 15일 딸들과 함께 웃고 있는 그의 사진을 공개했지만 위독설을 잠재우지는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뤄진 차베스의 귀국은 국내 정세 불안을 끝내기 위한 특단의 조치로 해석된다. 현 베네수엘라 여권에는 차베스의 카리스마와 대중적 인기를 대신할 만한 차세대 주자가 없다. 여기에 심해지는 양극화와 치안 불안은 차베스의 주요 지지세력인 빈곤층의 민심마저 악화시켰다.

 앞서 ‘반미의 선봉장’ 역할을 해 온 차베스가 17일 돌연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지시한 것 역시 본인의 판단능력을 보여 주기 위한 결정이었다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엘리아스 하우아 베네수엘라 외교장관은 현지 텔레벤TV와의 인터뷰에서 “차베스 대통령이 외교관들에게 미국과의 우호적 관계 구축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하우아 장관은 또 “로이 차데르톤 미주기구(OAS) 주재 대사가 미 정부 관계자들과 접촉해 양국의 대사 관계 복원에 대해 논의하라는 것이 차베스 대통령의 바람”이라고 설명했다. 베네수엘라는 2010년 미국이 지명한 주베네수엘라 대사가 무례한 외교 언급을 했다며 신임장 제청을 거부했다. 이에 미국 역시 주미 베네수엘라 대사의 비자를 취소하면서 양국의 대사 자리는 공석으로 남아 있다. 베네수엘라의 국가 주수입원은 석유 수출이며, 미국이 최대 구매국이다.

유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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