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어린이도 꼬마스타 도전 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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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들의 방송.영화 등 영상문화 참여 열기가 뜨겁다. 각종 오디션에 아이들이 몰리는 것은 이제 낯선 일이 아니다. 과거 연예인을 지망하는 소수 아이들이 주로 참여했던 영상문화가 바야흐로 일반 어린이들이 향유하는 대중문화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초.중학생들을 대상으로 최근 제2회 어린이 드라마 극본을 공모한 EBS 관계자들은 깜짝 놀랐다. 무려 2백60여편의 응모작 중 반수 이상이 초등학생 작품일 뿐 아니라 수준도 지난해에 비해 크게 높아졌기 때문이다.

장애인 친구와의 우정, 첫사랑의 기억을 다룬 작품에서부터 상상 속 영웅담을 묘사한 작품까지 내용도 다양했다. 심사위원단은 예선 통과작 30편을 고르는 데 진땀을 흘려야 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역시 최연소로 응모한 초등학교 3년생 주진주(10.왕산초등학교) 양. 지난해에 이미 가작에 입상한 경력이 있는 진주는 심사위원들에게서 "세상을 보는 감수성이 탁월하다"는 평을 들었다.

그렇다고 진주가 드라마 작가를 꿈꾸는 건 아니다. 장차 의사가 돼 재밌는 병원을 만들겠다는 소망을 가진 진주가 극본을 쓰게 된 건 지난해 어린이드라마를 공모한다는 얘기를 듣고부터. 진주는 응모작을 쓰기 위해 '시나리오 작법'이라는 두꺼운 책을 사서 밑줄을 쳐 가며 공부했다고 한다.

"어린이 드라마에 어른들 생각이 너무 많이 들어갔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직접 써 보고 싶었어요. "

지난 14일 오후 MBC 3층 '전파견문록' 회의실. 유치원생 하나가 방송작가 2명이 던지는 질문에 또박또박 대답하고 있었다. 영문도 모르고 따라온 그 아이의 엄마는 "소심한 줄 알았던 아이가 저렇게 말을 잘하다니…"라며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전파견문록'출연을 위해 이런 식으로 오디션을 받는 어린이는 일주일에 12~15명. 1백여 회 방영되는 동안 모두 1천2백84명의 어린이가 방문했다. 그동안 인터넷으로도 신청이 3천여 건 들어왔는데,어린이 스스로 신청하는 경우가 3분의 1에 달한다고 한다.

전송희 작가는 "또래 사이에서 스타가 되고 싶어하는 아이들의 참여 열기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뜨겁다"며 "연예인 지망생이 아닌 아이들이 대거 몰리고 있는 것도 이전과 다른 점"이라고 말했다.

EBS의 인기 어린이 프로인 '모여라 딩동댕'은 연초에 공개 오디션을 하는데, 보통 5백명 이상의 아이들이 몰린다고 한다. 어린이팀 정현숙 팀장은 "이런 열기를 타고 동네마다 웅변학원이 있던 자리에 연기학원이 들어서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연기학원 MTM에는 초등학생이 전체 수강생의 30~40%인 1백50여명에 이른다. 예전엔 부모들이 아이들을 끌고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나 요즘엔 어린이들이 부모를 졸라 오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게 학원측의 설명이다. 또 예전에는 특출한 외모의 아이들이 주로 찾아왔으나 요즘은 개성 강한 아이들이 많다고 한다.

이에 대해 MTM의 황의노 이사는 "요즘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영상 문화를 접하며 자라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참여 욕구를 갖게 된다"고 분석한다. 그러다보니 TV뿐아니라 영화 등 각종 영상매체 오디션에 아이들이 몰린다는 설명이다.

지난해 개봉한 '공포택시'와 올해 개봉한 '달마야 놀자'의 경우 어느 정도 연기 경험이 있어야 한다는 조건을 제시했는 데도 오디션에 70~80명의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어린이들이 영상문화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던 존재에서 벗어나 주체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음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주철환(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는 "아이들이 영상 문화에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부정적인 면보다 긍정적인 면이 많다"며 "아이들이 창의성을 기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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