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개정안 확정] 주5일 근무제 아직 갈길 멀어

중앙일보

입력

노동부.행정자치부.교육인적자원부 등 관계 부처의 의견조율을 거쳐 마련된 주5일 근무제 정부안은 노사정위의 공익위원안을 토대로 노사간 이견을 절충한 것이다.

특히 노사가 첨예하게 대립해온 임금보전 문제 등은 공익위 원안을 그대로 채택했다. 초과근로시간, 연월차 통합, 생리휴가 무급화 등은 경영계의 손을 들어줬으며 임금보전 원칙을 법에 명시하기로 한 것은 노동계의 입장을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노사합의가 무산되면서 정부가 궁여지책으로 마련한 개정안이 입법까지 갈 길은 험하고 멀다.

◇ 공공부문과 대기업이 앞장=정부안에는 공공부문과 금융 및 대기업을 앞세워 민간부문 주5일제를 이끌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즉 공무원과 금융업 종사자가 주5일 근무를 하게 되면 토요일에는 기업 활동과 관련된 각종 행정.금융업무를 볼 수 없게 된다. 대기업 납품업체가 많은 중소기업이 토요일 근무하더라도 근로자 임금 대비 실익이 적어 결국 주5일제로 따라 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특히 주5일 수업제가 도입되면 토요일 자녀 관리문제가 심각해진다. 정부에서는 방과 후 특별활동 등으로 집에 홀로 남게될 아이들을 흡수하겠다는 복안을 마련 중이지만 결국 주5일 근무제가 확산될 것이란 정부의 분석이다.

정부가 주5일 근무제 도입을 서두르는 것은 DJ정권이 추진해온 노동개혁 핵심 과제인 만큼 어느 정도 반발을 무릅쓰더라도 첫발을 내디뎌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입법이 늦어질 경우 노동계가 즉각 시행을 요구하며 월드컵을 앞둔 내년 봄 임단투와 연계시킬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

◇ 국회 통과 어렵다=그러나 정부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주5일 근무제 입법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정치권과 노동계.경영계 주변에서는 벌써 "물건너 갔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경영계의 입장을 상당히 많이 반영했다"고 평가받는 정부안에 대해 노동계가 즉각 반발하고 나선 데다 경영계 역시 반대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노총은 18일 성명을 통해 "노총의 요구사항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며 "공익위원안과 재계의 요구를 짜집기한 개정안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도 "1천1백만 중소 영세사업장과 비정규직 근로자의 희생이 너무 크다"며 정부안의 전면적인 재검토를 요구하고 나섰다.

경영계는 노동계에 비해 강도는 덜하지만 정부안에 대해 반대성명을 발표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노사간 이해관계를 떠나 어려운 경제현실을 철저히 외면한 것"이라 지적하고 "정부 단독 입법은 국익에 도움이 안된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정부가 노.사의 반발을 무릅쓰고 입법안을 국회에 제출하더라도 통과될 가능성이 희박해 보인다.

일단 민주당은 정부 입법안에 긍정적이다.민주당은 이날 논평을 통해 "노사가 합의에 이르지 못해 유감이지만 규모가 큰 사업장부터 순차적으로 도입키로 한 것은 올바른 방향"이라고 평가했다.

한나라당의 입장은 다르다.한나라당 김만제(金滿堤)정책위의장은 "주5일 근무 관련법안은 반드시 노사정위가 합의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 당 입장"이라고 밝혔다.

특히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구성하고 있는 의원은 ▶한나라당 8명▶민주당 7명▶자민련 1명으로 한나라당의 지지가 없으면 법안 통과가 어렵다.

여기에다 한나라당 의원 가운데 김문수(金文洙).전재희(全在姬).김낙기(金樂冀)의원 등 친노동계 인사들이 많고 민주당 의원 가운데 전임 한국노총위원장이었던 박인상(朴仁相)의원 등이 포진하고 있어 노동계가 적극 반대할 경우 이들이 정부의 손을 들어줄지 의문시된다.

김기찬 기자 wolsu@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