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미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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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동양인의 미소」는 「모나·리자의 미소」보다도 더 신비하고 야릇하다고 말하는 서양친구들이 있다. 울어야 할 때나 화내야 할 때에도 으례 동양사람들은 까닭 모를 미소를 짓는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케네디」 대통령의 장의식에 참석했던 일본 지전 수상의 미소-. 그는 공항에 도착하였을 때 보도진의 「카메라」 앞에서, 그만 그 독특한 동양인의 미소를 짓고 말았다. 그 사진을 본 미국 독자들은 남의 장례식에 조상하러 온 사람이 무엇이 좋다고 그렇게 벙실거리냐고 분개한 적이 있었다.
역시 그 죄는 동양인의 미소를 잘 이해하지 못한 그들에게 있는 것 같다. 그 증거로 상처한 동양인들에게 『부인께서는…』이라고 물어보면 될 것이다. 그는 『예, 1주일 전에 죽었읍니다』라고 말하면서도 만면에 미소를 짓는 것이다. 결코 아내가 죽은 것이 기뻐서 웃는 것은 아니다. 웬일인지 우리 동양사람들은 거북하고 멋적은 자리에서는 으례 미소를 지으면서 살았다. 특히 자동차 운전사가 교통순경에 걸렸을 때 그 동양인의 신비하고 부조리한 미소는 극치에 달한다.
붉은 딱지를 받은 운전사의 마음은 울어도 시원찮을 터인데, 마치 백만 원짜리 복권이라도 당첨된 듯이 벙실벙실 웃는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교통순경의 표정은 지옥의 마왕. 10년 원수를 대한 듯이 살벌하다. 서양에선 이와 정반대의 광경이 벌어진다. 딱지를 떼는 순경은 으례 미소를 짓고, 운전사는 불쾌한 표정을 짓는 것이다.
교통법규를 법대로 다루면 될 것이지, 도대체 교통순경이 핏대를 올려야 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법규를 어겼으면 벌을 받을 것이지, 운전사가 창녀처럼 웃어야 할 까닭이 어디 있는가? 이러한 태도가 바로 요즈음 화제가 된 교통순경과 운전사의 미묘한 감정대립을 일으킨 근원적인 원인이겠다. 동양의 미소, 그 까다로운 미소, 비굴하고 멋적고 경계를 가장한 그 복잡한 미소, 표면과 이면이 다른 가면의 미소-. 관의 부패가 그 미소를 키워주었고, 그 미소 속에서 또한 관의 부패가 자라났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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