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원작 할리우드식 덧칠 바닐라 스카이'

중앙일보

입력

타고난 매력과 든든한 재력을 지닌 데이비드(톰 크루즈) .

원색적인 여자 줄리(카메론 디아즈) 와 교제 중이던 그는 자신의 생일 파티에서 만난 친구의 애인 소피아(페넬로페 크루스) 에게 반해 줄리를 멀리한다.

질투에 치를 떨던 줄리는 데이비드를 차에 태워 동반자살을 시도한다. 겨우 목숨을 건진 데이비드. 하지만 얼굴이 흉칙하게 변하고 소피아도 예전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바닐라 스카이'는 스페인 감독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의 '오픈 유어 아이즈'(1997년) 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아메나바르 감독은 톰 크루즈의 전 부인 니콜 키드먼이 주연한 '디 아더스'를 올해 베니스 영화제에 출품해 화제를 모았다.

'오픈 유어 아이즈'에 매료된 카메론 크로 감독은 "위대한 영화에 겉표지를 다시 씌운다는 마음이었다. 원작을 토대로 하되 나만의 뉘앙스를 가미했다"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줄거리는 물론 로맨스.미스터리.SF.스릴러가 독특하게 결합한 원작의 골격을 그대로 '복사'했다. 복잡하게 얽힌 편집 기법과 뫼비우스 띠 같은 이야기 구조도 빼닮았다.

다만 유럽에서 할리우드로 건너오면서 치장술이 화려해졌는데 주인공 데이비드가 더 부유해졌고 자아도취적 경향이 한층 심해진 남자로 그려진다. 크리스마스 기운이 물씬한 뉴욕 거리나 현대적인 인테리어가 인상적인 방에서 주인공들이 벌이는 베드신도 현란하다.

거기다 원작에 나왔던 페넬로페 외의 배우들보다 한 단계 더한 중량감을 주는 톰 크루즈와 카메론 디아즈가 조연으로 가세해 요란함은 더하다.

이 영화의 제작까지 맡은 톰 크루즈는 세상의 모든 것은 생각하기에 따라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으며 허상과 실상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극단적 인물로 그려진다.

나르시시즘적인 경향이 심한 극중 인물을 연기해서인지 '멋있다'는 소리를 들을 만하지만 동작 하나 하나가 침착함과는 거리가 있다. 그에게 호감을 가진 관객이라면 모를까 거울을 보며 얼굴을 매만지는 표정이나 복도를 걸으며 으쓱거리는 어깨에서 '오버'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관객은 잘 생긴 크루즈의 얼굴을 절반만 봐야한다. 나머지 절반의 분량에선 사고 당한 후의 얼굴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톰 크루즈의 얼굴도 저렇게 될 수 있나'라고 되뇌는 느낌은 상당히 색다르게 다가온다.

남자에게 버림받아 악녀로 변하는 줄리 역의 카메론 디아즈는 신선하다. 하지만 '오픈 유어 아이즈'에서도 출연했던 스페인 여배우 페넬로페로부터 원작에서의 연기를 능가하는 매력은 찾기 어렵다.

무엇보다 '올모스트 페이머스''제리 맥과이어'를 연출한 크로 감독은 자신의 색깔보다 알레한드로의 편력에 경도된 탓인지 장면 장면은 볼만하게 나열하고 있으나 이야기의 연결을 그다지 매끄럽게 이어가지 못한다. 때깔은 나아졌다고 하나 알레한드로의 매니어들은 할리우드를 향해 일침을 가할지도 모른다. 21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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