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황당하면 어때 실컷 울고 나니 속이 다 후련한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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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0호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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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7번방의 선물’을 나쁜 영화라고 규정한다. 의도된 자극을 주어 관객들에게 감정이 남아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계산된 감정 상품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관객들을 자극에 반응한 파블로프의 개로 대접할 뿐이다.”

컬처# : 관객 800만 돌파 ‘7번방의 선물’ 작품성 논란

영화 저널리스트 최광희씨가 최근 트위터에 남긴 영화 ‘7번방의 선물’ 평이다. 이 영화에 호의적이지 않은 건 최씨만이 아니다. 영화계의 평가는 대체로 박하다.

하지만 시장과의 온도 차는 크다. 이 영화는 최근 관객 800만 명을 넘겼다. 손익분기점에 해당하는 관객 수(170만 명)의 다섯 배 가까운 성적이다. 개봉한 지 20여 일 만이다. 그야말로 파죽지세다. 한국 영화 역대 박스오피스 톱10에 이미 진입했다. 극장가에선 1000만 관객 돌파를 조심스럽게 점치고 있다.

‘7번방의 선물’이 예상 밖으로 흥행하는 이유에 대해선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줬다”는 분석이 아무래도 그럴듯해 보인다. 몇 년 전 소설가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가 200만 부 넘는 판매를 올린 이유와도 통하는 듯하다. 이 영화는 전형적인 ‘티어 저커(tear-jerker)’다. 눈물 질질 짜게 하는 최루성 영화나 드라마, 소설 등을 일컫는 말이다. 다른 말로 하면 ‘크리넥스 영화’나 ‘손수건 영화’쯤? 지적장애라는 결핍을 가진 주인공(류승룡), 교도소와 사형언도라는 극한 상황, 딸을 위해 누명을 벗는 대신 죽음을 선택하는 부성애 등 감성 코드가 총집결했다.

눈물을 흘리게 하는 과정에서 작위적인 요소가 강한 건 부인할 수 없다. 감방에 어린 딸을 몰래 데려와 부녀가 상봉한다는 설정이 대한민국 교도 행정 현실상 가당키나 한가. 부녀가 마지막 만나는 자리에서 애드벌룬을 타고 하늘을 나는 장면도 완벽한 판타지다.

그런데도 극장엔 최루탄이라도 터진 듯 온통 눈물바다다. 감상 후기엔 “휴지를 꼭 준비하라” “너무 울어 머리가 아프다”는 내용이 다수다. 관객들이 비현실적 설정을 몰라서, 시쳇말로 슬픈 얘기에 낚여서 이 영화에 몰린다고 생각한다면 오해다. 그보다는 울고 나서 후련한 기분, 감동받았다고 생각한 만족감이 크고 이것이 입소문을 탄다고 봐야 한다. 울음의 힐링 효과다. 소위 ‘다이애나 효과(Diana Effect)’ 같은 거다.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장례식이 끝난 후 영국에서 심리 상담을 받는 건수가 절반으로 줄어든 데서 나온 말이다. 영국 국민들이 TV로 중계된 장례식을 보며 눈물을 펑펑 흘린 게 스트레스 해소에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막장 드라마 시청자들의 반응과도 비슷한 부분이 있다. 막장 드라마 시청자들은 드라마 속 주인공(대개는 억울하고 가련한 신세)에게 자신을 대입시킨다. 그러면서 악역을 욕하고 악역이 파국을 맞는 데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막장 드라마에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라는 별명이 붙는 이유다. 드라마를 보고 나면 심정이 후련하니 시청률은 높게 유지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눈물을 흘리는 입장에선 ‘나쁜 영화’ 논란이 큰 의미가 없다. 누가 억지로 울게 해서 울었건, 자연스럽게 울었건 무슨 상관이겠는가. 그냥 한 번 속 시원하게 눈물 흘릴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한 것 아니냐는 말이다. 1만원도 안 되는 돈으로 얻을 수 있는 두 시간의 힐링, 그것이 ‘7번방의 선물’이 의외의 흥행을 한 속사정이다. 사족으로 덧붙이자면 나도 이 영화를 뒤늦게 봤다. 평소 난 감독이 이 장면에서 울어! 하면 우는 타입의 관객(다른 말로 하면 파블로프의 개)에 가까웠다. 이 영화를 보고도 조건반사적 반응이 나올지 과연 궁금했다. 결과는? 상상에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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