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보(43~54)=좌상 쪽 흑의 형태는 프로라면 마음에 들 리 없겠지요. 비능률을 상징하는 ‘기역자’가 두 개나 되는데 집이라고는 옥집 하나밖에 없으니 누군들 좋아하겠습니까. 그러나 43으로 미는 수가 힘이 있어서 흑도 47까지 두터움을 얻었습니다. 박영훈 9단은 이래서 흑도 그럭저럭 할 만하다고 말합니다.
선수를 잡은 이세돌 9단이 48이란 기막힌 곳을 차지합니다. 흑이 먼저 A의 턱 밑으로 다가서는 것을 상상해 보십시오. 실리적으로 엄청난 곳 아닙니까. 그러나 천야오예는 서두르지 않습니다. 백이 손 빼고 다닌 우변을 49로 압박하면 그 정도 대가는 충분히 뽑아낼 수 있다는 계산입니다.
사실은 흑이 49로 공격해 온 순간, 바둑은 조용히 승부처로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백 돌이 근거 없이 너덜거리는 것 같지만 이런 상황은 이세돌 바둑에선 흔한 것이지요. 그걸 공격하다가 빈손 쥐고 물러선 기사가 어디 한둘입니까. 어떻게 타개할까 궁금한 장면에서 50, 52이라는 예상 외의 수가 등장합니다. 두 점 머리 급소를 자청한 50 같은 수는 프로 바둑에선 금기로 치는데 이세돌은 태연히 두고 있습니다. ‘참고도1’ 흑1로 가로막으면 6까지 살겠다는 것입니다.
그게 싱겁다고 본 천야오예는 53으로 가만히 빠집니다. ‘참고도2’처럼 달아나라는 뜻이지요. 그런데 이세돌 9단, 또다시 54라는 기상천외의 한 수를 두고 있습니다. 상대의 혼쭐을 빼는 강수입니다.
박치문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