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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와 노부히로 감독 "내 영화는 배우들의 작품"

중앙일보

입력

홍상수 감독이 신작 '생활의 발견'을 완성된 시나리오 없이 촬영한다고 해서 화제다.

그러나 올해 광주국제영화제에 '듀오(1997년) ''H스토리(2001년) '를 출품한 일본의 스와 노부히로(41.사진) 감독은 데뷔 이후 만든 세 편을 모두 대본 없이 완성하는 특이한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듀오'는 로카르노영화제 신인감독상을, 'M/Other(99년) '는 칸영화제 국제비평가연맹상을 탔고,'H스토리' 역시 칸영화제의 주목할만한 시선에 출품돼 영화의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사와 스토리가 완전히 갖춰진 대본에 집착하지 않는 건 현장에서 배우들의 생생한 연기를 끌어내기 위해서다. 작품의 기본 컨셉, 즉 배우들이 처한 상황만 던져주고 배우들이 거기에 몰두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스토리 자체를 배우들이 이끌어 가게 한다."

TV방송국에서 다큐멘터리를 여러 편 만들었던 그는 작업을 하면서 다큐멘터리의 한계를 느꼈다고 한다.

"인터뷰를 할 때 상대는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솔직한 내면을 좀체로 드러내지 못한다. 물론 진실한 감정이 간혹 포착될 때가 있다. 감정에 북받쳐 펑펑 울 때가 있는 것이다. 그럴 때 찍는 사람은 굉장한 행운을 잡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신을 드러낸 그 당사자는 무엇인가. 자신의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이 카메라에 담긴 뒤 공허하고 소외된 감정을 갖지 않겠는가."

그래서 그는 픽션을 택했다. 장 뤼크 고다르가 '영화는 현실의 반영이 아니라 반영의 현실'이라고 한 말의 뜻도 이해하게 됐다.

"배우들이 역을 완전히 소화한 다음 그들 사이에 감정의 공감이 생길 때, 그래서 의도된 연출과는 상관없이 배우들 스스로 이끌어가는 영화가 될 때 나는 만족한다. 이럴 때 배우는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는 것이다.이건 다큐멘터리에서 인터뷰 대상자가 하는 행동과는 다른 차원이다. 배우는 자신으로부터 전혀 소외되지 않으면서도 가식없이 자연스러운 연기를 펼치게 되는 것이다."

깊이 사귀는 남녀가 결혼문제로 갈등하는 이야기를 다룬 '듀오', 동거하는 남자에게 전처 자식이 끼어들면서 생기는 충돌을 그린 'M/Other', 알랭 레네의 '히로시마 내사랑'을 리메이크 하려고 하지만 역사적 체험이 달라 배역에 몰두하지 못해 괴로워하는 여배우(베아트리체 달) 의 모습을 담은 'H스토리'. 그의 영화들은 연출의 힘 보다는 영화 속 배우들의 연기에 의해서 견인된다.

"나는 나를 표현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영화광이셨던 아버지는 내가 고등학교때 감독이 되겠다고 하자 '넌 개성이 없어서 안 돼'라며 일축하셨다. 그래서일까. 난 내 속에 있는 어떤 것을 끄집어내기 보다는 인간 관계에서 벌어지는 일에 더 관심이 쏠린다. 영화를 찍을 때도 스태프들과의 협업을 즐긴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처럼 스태프들이 무조건 자기를 따르기만을 바라는 독재 스타일이 아니다. 그러나 스태프들과 협력을 하면 영화가 더 풍부해 진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는 'H스토리'를 만들면서 너무 힘들어 자살을 생각하기도 했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영화 감독은 결코 자살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프랑스의 철학자 질 들뢰즈는 사상적 난관에 봉착하자 아파트에서 투신했다. 그러나 장 뤼크 고다르 감독은 사유의 미로 속에서 고뇌하지만 자살을 하진 않았다(웃음) . 그건 사상가는 고독하게 작업하지만 영화 감독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열려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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