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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역「바캉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송전, 원산, 석왕사 하면 이젠 「안데르센」의 동화에 나올 법한, 먼 옛 고장같이 여겨지지만 실상 바로 지척에 있는 실지. 얄궂게도 국권이 회복되자마자, 우리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이 되어 버렸지만, 여름만 오면, 또 해마다 가시지 않는 한더위 속에서 8·15를 맞을 때마다, 생각나고 그리워진다. 어찌 해수욕장이나 명찰뿐이랴. 산수와 바다가 함께 그윽한 정기를 타서, 필설이 다할 수 없는 절경을 이루는 금강도 있다.
도로 찾을 때까지 참아야 한다. 우리 손으로 가꾸어 즐길 수 있는 날이 올 때, 오랫동안 그리던「바캉스」의 명소들이 졸지에 지저분해 질까, 벌써부터 걱정이다. 해를 쫓아 여름철에 바다며, 호수며, 유원지를 찾는 피서 인구가 늘어가오 있고, 절대 인구의 증가와 함께 거의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루에 전국을 통해서 몇 군데 안 되는 피서지에 몰린 인구가 백만을 넘었다면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러나 그 중의 몇 분의 1이 「바캉스」의 진미를 맛보고 돌아 왔는가를 생각 해보면 한심한 일.
피서지까지의 왕복 교통편의 부조리는, 소위 2등차 표를 사 들고, 서서 수백리 길을 왔다 갔다 해야 하는 고역으로 그치지 않는다. 매년 수십만이 들끓는 곳에 공동 변소 시설하나 변변한 것이 없다. 합리적인 오물 처리법이 눈에 띄지 않는다. 「호텔」의 외양만을 갖추어 놓고 호된 숙박비를 받아 내지만, 욕실에 꽂힌 「샤워」꼭지에선 구정물 한 방울 새어나오지 않는다.
좁은 장소에 많은 군중이 몰리다 보면, 사양이나 「에티케트」니하는 것은 공염불이 되고, 북새통에 한몫보려는 장사치들에게 시달리다 보면, 짜증이 나기 마련. 그러다 보면 쌈질이 나고, 칼부림이 생기고, 때로는 피서 행이 저승길이 되는 수도 있다.
광복 스물 둘을 맞을 때까지 이와 같은 역 「바캉스」의 부조리가 깨끗이 가셔 줄 것을 바라는 것은 헛된 과욕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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