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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20년」의 반공법 위반혐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작보에 의하면 서울지검 공안부 최대현검사는「북한20년」의 저서 유운소씨를 소환하고 동서의 내용에 관련하여 씨를 반공법위반혐의로 내사중이라고 알려졌다.
검찰당국의 이와 같은 움직임에 관하여서는 동 사건이 아직 정식으로 입건·기소된 것도 아닐뿐더러 사건내용의 전모에 대하여서도 신문보도를 통하여 알려진 단편적인 사실 이외에는 따로 알려진 바가 없으므로 아직 논평할 단계가 아니라 하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사건이 국민에게 비상한 충격을 주고있음은 주로 다음과 같은 사유에서라고 생각된다.
첫째는 동서의 필자가 정부의 대공조사정보기관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현직 공무원일뿐더러, 동서는 지난 3월 그 초판이 출간된 이래 공보부장관의 추천까지 받아 이미 국내에 널리 반포된 책이라는 것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동서의 저자 유씨가 공보부석보조사계의 현직 책임자임과 아울러 내외문제연구소의 이사겸 KBS방송의 공산권문제시사해설위원이라는 요직을 맡고 있음은 사계인사들간에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필자가 공산권문제의 내막이나 사실에 관하여 발언하거나 서술한 문장의내용, 그것도 정부관계부처장관의 추천까지 받은 글귀의 내용이 짐짓 반공법위반혐의를 받게된다면, 그 미치는 영향은 매우 심대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만일 북괴나 공산권의 내막에 관하여 기술한 글귀의 내용일부 중 실제로 북괴를 찬양·고무하는 글귀가 있었다면 용납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다는 막연한 것만으로 위법시 될 수 있다면 해석하는 사람의 해석안 여하에 따라 위법여부가 결정될 것이니, 일반은 물론 학술연구기관에서 행하는 일체의 조사연구활동도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일으키게 하기 때문이다.
다음은 이번 사건에 대한 검찰당국의 내사가 동서의 출간 이후 5개월이나 경과된 이제와서 갑작스럽게 착수됐다는 점에 대한 놀라움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동서의 내용이 사실상 반공법에 저촉되는지의 여부에 대해서 경솔한 판단을 삼가고자 하거니와, 범법혐의가 있는 출판물에 대한 검찰당국의 수사가 사실상 법익을 보호할 수 없을 만큼 오랜 기간이 경과된 연후에야 착수되었다는 사실은 당국의 출판물단속 대책에 어떤 중대한 결함이 개재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을 일으키기에 족한 것이다.
우리는 과거에도 일부영화 또는 출판물의 내용이 반공법위반혐의로 입건·기소된 사례를 알고 있거니와, 이 경우에도 수사당국자의 수사 또는 입건착수의 속도는 왕왕「원님 지나간 뒤의 나팔」격인 경우가 비일비재였음을 우리는 상기한다. 사실 지금 일반서점의 서가에 꽂힌 서적 가운데서도 이러한 혐의를 받을만한 서적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인즉, 이런 경향의 방치는 사실상 반공법이 기대하는 법재 보호에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을뿐더러 자칫 잘못하면 일반서점경영자나 독서가들로 하여금 공산권에 관한 서적에 대한 전반적 취급기피 경향을 조장할 우려마저 없지 않은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반공법위반혐의로 어떤 출판물을 내사 또는 입건하려는 수사당국의 신중과 수사착수에 있어서의 시기일실이 없기를 바라는 동시에, 어느 특정출판물의 반공법위반혐의가 그 저서 또는 문맥전체의 본지를 떠나, 지섭말단에 속하는 글귀상의 표현이나 사진의 제시를 에워싸고 자주 문제시됨으로써 공산권 연구에 종사하려는 학도 또는 일반 국민의 사기를 꺾는 일이 없도록 각별한 유의를 바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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