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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박사 분석] 상. <메인>'박사 공장' 서울대 박사 2684명 분석해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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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10년 전 서울대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딴 이준희(가명.45)씨는 '보따리 장사(시간 강사)'를 해왔다. 1996년부터 지방대 교수 임용에 여섯 차례 지원했지만 모두 떨어졌다. 대학에서 받는 시간 강사료는 월 70만원 선. 6년 전 가정을 꾸린 그는 생계를 위해 입시학원에서 영어 강의를 하고 있다. 그는 "먹고살려다 보니 전공 연구는 꿈도 못 꾼다"고 말했다.

박사 배출 하버드의 1.6배
"다시 태어나면 박사 안해"

"주변엔 부인에게 경제적으로 의지하는 '와이프 장학생'도 적지 않습니다. 다시 태어나면 박사는 절대 하지 않겠습니다." 그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서울대 출신 박사 열 명 중 네 명은 비정규직을 전전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제 경쟁력이 떨어져 외국 대학 진출은 꿈도 못 꾸고 있다.

이는 본지 취재팀이 2001~2004년 서울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3241명의 진로 현황 자료를 입수해 이 중 2684명을 직접 분석한 결과다. 거의 대부분 직업이 있는 상태에서 박사 학위를 하는 의.치대 박사 557명은 분석에서 제외했다.

박사 학위자 중 37%는 시간 강사와 임시직 연구원 등 비정규직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진로 확인이 안 된 사람(11.6%)의 상당수는 변변한 직장이 없는 잠재적 실업자로 추정된다. 이를 감안하면 비정규직 비율은 40%가 넘는 것으로 서울대 측은 보고 있다.

교수 임용자는 전체의 8.5%였다. 학위를 받는다고 다 교수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일본 도쿄(東京)대나 미국 유명 대학 출신 박사의 교수 임용률이 20%대인 점과 비교하면 크게 낮은 수준이다. 사회 수요를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박사 정원을 늘려온 때문이다.

국내 박사 학위자는 지난해 처음으로 한해 1만 명을 넘어섰다. 한국의 인구 1만 명당 연간 박사 학위자는 1.75명으로 독일.영국에 이어 3위다. 경제 규모와 고급 인력 양성의 불균형을 잘 보여준다.

이런 박사 과잉 공급 구조의 정점에 서울대가 있다. 서울대는 4년간 박사 정원을 1283명에서 1604명으로 25%나 늘렸다. 서울대는 지난해 865명의 박사를 쏟아냈다. 이는 국내 127개 대학이 지난해 배출한 전체 박사 학위자의 10%를 넘는 수치다. 서울대보다 예산이 다섯 배 많은 미국 하버드대는 2002년에 543명을 배출했다.

전문가들은 서울대가 현재의 박사 양산 체제를 수술하지 않으면 국가 전체의 고급 인력 양성 시스템의 왜곡도 바로잡을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한다. 서울대 박사 한 명을 양성하는 데는 평균 1700만원의 국고가 들어간다.

한국교육개발원 김흥주 연구실장은 "수요를 감안하지 않고 비효율적으로 박사를 쏟아내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이라며 "뺄 건 빼고 줄일 건 줄여 연구의 질과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탐사기획팀

◆어떻게 분석했나=본지는 국내 박사의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2월 말 서울대의 18개 대학원별 박사학위자 현황 자료를 입수했다. 이를 토대로 한 달간 300여 명을 직접 만나거나 전화 취재를 했다. 서울대가 국내 최대의 박사 양성기관이어서 취재 대상으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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