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와사람들] 前권투챔프 홍수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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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대를 풍미한 챔피언의 얼굴엔 어느덧 주름이 내려앉았다. 머리숱도 눈에 띄게 빠졌지만 골프 이야기를 꺼내자 특유의 달변이 쏟아져 나온다.

"골프 스윙은 라이트 어퍼커트를 날릴 때의 원리와 비슷하지요. 어깨 회전이나 스탠스도 권투와 흡사해 금방 골프의 묘미에 빠져 들었습니다."

1977년 파나마에서 벌어진 프로권투 WBA 주니어페더급 타이틀 결정전에서 헥토르 카라스키야를 3회 KO로 물리치고 '4전5기'의 신화를 일궈낸 홍수환(51.사진)씨는 소문난 골프 매니어다.

미국이민 시절인 87년 골프채를 처음 잡은 홍씨는 타고난 운동신경을 바탕으로 6개월이 채 못돼 싱글 골퍼의 수준에 올라섰다. 베스트 스코어는 74타지만 요즘 핸디캡은 12정도며, 홀인원을 두차례 기록했다.

특히 자랑할 만한 성적으로는 94년 한양 골프장 신코스의 10번(파3)·11번(파5)·12번(파4)·13번(파4)홀에서 4홀 연속 버디를 기록한 것을 꼽는다.

"골프는 무척 재미있지만 권투보다 쉽기도 하고 어렵기도 해요. 당일의 컨디션이나 자신감과는 관계없이 결과가 반대로 나올 때도 많잖아요. 체구에 상관없이 우승할 수 있다는 것과 18홀이 끝날 때까지 결과를 속단할 수 없다는 점도 골프의 매력이지요."

가장 좋아하는 선수는 김미현과 박세리를 꼽는다.

"김미현은 작은 체구에도 세계적인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이 너무 예쁘고 박세리는 국내 골프의 발전을 위해 주춧돌을 놓은 멋진 선수지요."

홍씨는 박세리가 98년 US오픈 연장전에서 공을 워터 해저드에 빠뜨리던 장면에서 카라스키야가 자신을 다운시켰던 경험이 떠올랐다고 털어 놓았다.

"카라스키야가 나를 다운시킨 뒤 이를 보이며 웃더라고요. '요놈 봐라'하고 이를 악물었지요. 박세리 선수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박세리가 양말을 벗고 워터 해저드에 들어가는데 추아시리폰이 웃는 모습이 TV에 비치더라고요. 그러나 승리는 결국 박세리의 몫이었지요."

자신이 그랬듯이 박세리가 상대의 허점을 파고들어 우승할 것이란 걸 예견했단다.

요즘도 한 달에 3~4차례 반드시 골프장을 찾는다는 홍씨는 강연을 다니면서 건강식품업체의 고문을 맡아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바쁜 와중에도 내년 봄엔 부인 옥희씨와 함께 부른 노래를 담은 새 앨범을 출시할 예정이라고 했다. 옥희씨도 연예인골프대회 때마다 상위권에 드는 수준급 골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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